나는 꽤나 오래 정신과 진료를 받아왔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으니 이제는 정신과를 다닌 기간이 안 다닌 기간보다 더 길다. 대단한 건 아니고 우울과 불안장애 때문이다. 그다지 심하지는 않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던 경험들이 많아서 매번 최악으로 치닿지 않기 위해 애쓰며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크게 상태가 나쁘지 않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정신과 의사를 꾸준히 만나 상태를 점검받곤 한다. 일하기 위해 프랑스에 간 후, 집을 구하고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이 바로 내가 있는 도시의 정신과 의사였다.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프랑스에서 전문의 진료 예약은 쉽지 않다. 한국보다 전문의의 수가 적은 건지 왜 이렇게 진료받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Doctolib 앱에서 정신과 의사를 검색하고, 의사의 정보들을 확인한다.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의사여야만 했다. 또한 찾아가는 데 너무 멀거나 교통이 불편한 곳은 배제했다. (정신과가 가기 어려우면 진료를 빼먹기가 쉽다) 그렇게 고른 의사로 예약을 하니 세 달 뒤에나 가능하더라. 한숨을 푹 쉬고는 다행히도 한국에서 딱 세 단치의 약을 챙겨 왔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먹으며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 진료일이 되어 병원을 찾았다. 여러 의사들이 함께 진료하는 클리닉 느낌이었다. 접수처에서 예약했냐고 물어보면, 예약했다 대답하고 안내된 자리에 앉아 대기한다. 잠시 뒤 의사가 나와서 내 이름을 부른다. 한국에서는 보통 간호사나 접수처에 있는 분들이 “OOO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라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와 “Madame Lee?”하고 나를 부른다. 의사의 부름에 진료실에 들어간다. 정신과 진료실이니 의사의 데스크와 그 앞에 앉을 의자 몇 개가 전부이다. 자리에 앉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견서를 건네준다. 의사가 질문들을 하기 시작한다. 언제 여기에 도착했고 등등 프랑스에 오기 전에 어땠는지부터 프랑스에 온 후, 요즘 생활은 어떠한지 등 자세히 질문하고 그에 나는 대답한다. 여러 조언들을 해주고, 약 처방전도 준다. 한 달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며 이메일 주소도 알려준다. 친절하다.
운이 좋게도 바로 나랑 잘 맞는 의사를 만났다. (게다가 영어도 잘했다.) 정신과 의사는 다른 진료과 의사들보다도 나와 맞는 의사라는 느낌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담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느낌이다. 내가 쉽게 말을 터 놓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6명 정도의 정신과 의사들을 만났었는데, 그중 내가 편하게 여긴 의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약간, 로봇 같은 타입의 사람들이다. 정신과 의사라면 당연하지만, 냉철함을 보이는 의사들이다. 그렇다고 차가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저 친절하고 부드러운 타입의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 거리감 있게 느껴지는 정신과 의사들이 나는 더 편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면 나는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에서 만나 이 의사는 첫 진료에서부터 마음이 편했고, 프랑스에 있던 2년 4개월간 이 의사에게 끝까지 진료를 받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진료를 받으러 가야 했는데, 매번 상담 시간이 한국에서 보다 길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병원에 가면, “잘 지내셨어요?”하고 내가 그동안 생활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에 대해 간단하게 “이러이러하면 이럴 수 있죠”, “그러면 약을 이렇게 바꿔볼게요.”, “약은 예전하고 동일하게 처방해 드릴게요”, “그럼 잘 지내시고요 다음에 뵐게요.”라고 한다. 필요한 내용은 다 있으니 매우 효율적인 진료이다. 한국에서는 상담이 필요하면 심리상담사에게 따로 받아야 한다고들 많이 얘기한다. 병원은 거의 약 처방 위주라고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진료를 받을 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약 처방도 있지만 매번 상담까지 함께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비인후과 예약이 15분 단위로 잡혀있다면, 정신과는 30분 단위이다. 기본 한 환자에게 30분은 쏟는다는 거다. 기본이 길었다. 30분이면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프랑스에서 일반의 소견서 없이 가더라도 환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과가 안과, 치과, 정신과, 산부인과라고 들었다. 내가 전부 환급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진료 때마다 40~50유로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진료비보다는 비싼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는 의사가 두 종류로 나뉘어 있어서 정해진 가격만 받을 수 있는 의사와 진료에 따라 추가요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은 이들은 전자에게로만 찾아간다고 했다. 내가 간 의사가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병원 진료에서 싼 값을 찾지는 않는 편이다. 다른 아낄 것은 충분히 많으니까 말이다. 가능하면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진료를 받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다.)
첫 진료는 세 달 만에 받을 수 있었지만, 병원에서 한 달 뒤에 오라고 한 진료는 진료가 끝난 후 바로 예약을 잡아줘서 바로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병원에 올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서 프랑스 의료도 그렇게 예약을 고집하며 융통성이 없는 건 아니란 걸 알았다. 급하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기존 환자들을 위해 의사가 일정 시간은 미리 빼두는 듯했다. 한 번은 약을 바꿨는데, 새로운 약을 먹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부터였나? 에너지가 넘쳤다. 잠이 오지 않고 하루에 세 시간만 자도 충분했고 머릿속에는 각종 아이디어들로 넘쳐났다. 자려고 누웠다가 바로 무언가 생각나서 노트북 앞에 앉아 이것저것 적어 내려가곤 했다. 세 시간 자고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고, 베이스를 연습하고, 글을 쓰고, 책도 읽고 출근 전에 많은 것을 하고 출근하여 저녁까지 일을 했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게 계속 지속되니 내가 기분은 참 좋은데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세 시간 자고 멀쩡할 리가 없다. 나는 지금 뭔가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바로 내 담당 정신과 의사에게 지금 내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메일을 보냈다. 의사가 답장으로 약을 바꾸는 게 좋겠으니 병원에 전화하면 예약을 잡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런 후 바로 며칠 뒤 오전 8시경에 진료가 잡혔다. (결론은 약에 의해 약간 조증 증세가 왔던 거였다.)
이렇게 진료를 받으면서 나는 내 정신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며 프랑스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진료비가 40유로 정도 나오니 저렴하진 않았지만, 내가 추가로 들어둔 사보험 (Mutuelle)로 어느 정도 환급받을 수 있었고, 약값 자체는 한국보다 훨씬 저렴했다. 한 달분의 약을 대략 2유로 정도 내곤 했으니까 말이다. 프랑스에서 정신과 진료는 담당 의사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상담해 준다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한 번은 내가 예약 시간에 맞춰 갔을 때였다.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예약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가고 나는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다. 진료가 안 끝났다. 시계를 보았다. 40분이 지났다. 45분이 지났을 때 앞선 사람이 나오고 의사는 잠시 후 내 이름을 불렀다.
해외 생활을 하는 것은 제법 힘들다. 그래도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적응했다고 생각되지만 (외로움이나 향수병은 전혀 겪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일상에서 오는 작은 어려움들이 있다. 그렇기에 누구나 고국에서 보다 쉽게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고 질병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가지 않았던 정신과를 타국에서 찾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처음인 사람들에게는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나의 경험을 말해주고 싶다. 말만 잘 통하는 의사를 만난다면 당신의 정신 건강 문제는 훨씬 나아질 거라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료해 주고, 무엇보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다는데 대해 편견을 보이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병원을 한번 찾아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