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누드비치도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병원에서 옷을 벗으라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 같았다. 어찌 생각하면 어차피 치료를 위한 환자이니 옷을 벗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는 게 의사와 환자에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한국에서 언제나 가운 같은 것을 받고 갈아입으며 진료를 받아왔던 터라, 프랑스의 이런 환경이 낯설고 민망한 기분이 들곤 했다.
처음 프랑스에서 일을 시작하고는 직장에서 검진을 받으라 해서 의사를 찾아갔다. 캠퍼스 내에 있는 작은 클리닉이었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이 있는 곳이었는데, 간호사가 시력검사, 청력검사를 해준 후 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나를 안내했다. 문진을 10분가량 자세하게 진행하고는 나를 진료 베드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상의를 벗고 베드에 앉으라고 하더라. 갑자기 바로 벗으라니까 당혹스러워서, 재차 물어보니 계속 벗고 앉으라더라. 그렇게 상의탈의한 채로 받은 것은 청진기를 가슴과 등에 갖다 대며 진찰하더라. '겨우 이거 하려고 옷을 벗으라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병원에서 청진기로 진찰을 할 때, 의사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조심스레 진찰하곤 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게 낯설기만 했다. 겨울 실내의 공기는 조금은 차갑기도 옷을 벗은 후 으슬으슬한 찬 기운을 느끼며 간단한 진료를 마쳤다.
MRI를 찍으러 갔을 때가 더 당황스러웠다. 종양의 재발이 의심되어 MRI를 찍어야 했는데, 조영제를 직접 사 가지고 가는 게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전 글 참조) 작은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간다. 문이 양쪽으로 나있는 방인데 대기실 같았다. 한쪽 문은 복도로 나있어서 환자들이 새로 들어오고, 반대쪽 문은 MRI실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였다. 잠시 후, 담당자가 들어와서 내가 가져온 조영제를 받아 들고는 내게 먼저 옷을 벗으라 했다. 분명히 말했다. "Take off your clothes"라고. 나는 순간 '아 가운 아직 못 받았는데'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도 MRI를 찍었는데, 나는 부비동쪽만 찍는 거였기 때문에 상의 속옷까지 탈의하고, 위아래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채 MRI를 찍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속옷은 입은 채 상의와 하의 모두 그냥 탈의하라고 했다. 여기서 지금 그냥 벗으라는 거냐고 두어 번 물어보고 옷을 벗었다. 잠시 후 담당자가 다시 들어와 내 팔에 조영제 주사를 꽂아두었다. 그렇게 탈의한 상태로 MRI를 찍기 위해 담당자를 따라서 MRI 기기 쪽으로 이동했다. 왜 얼굴만 찍는 MRI인데 대체 왜 바지까지 벗게 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지만, 역시나 옷을 벗으라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 후에도 갑상선 초음파를 찍을 일이 있어 병원에 갔을 때도, 가운 없이 상의를 탈의하라고 했다.
프랑스 병원은 옷을 벗으라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 같다고 한국인 지인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지인은 프랑스에서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데 내게 말했다. "산부인과는 더 해요. 그냥 다 벗으라고 해요. 가운? 여긴 가운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난 갈 때 무조건 치마 입고 가요." 한국에서 산부인과를 가면, 진료실 한편에 탈의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일회용 치마를 준다. 속옷을 벗고 치마만 입은 채 진료실로 들어가서, 산부인과 진료의자에 다리를 벌린 채 앉으면 의사가 치마를 들추고 진료를 시작했었다. 프랑스는 그걸 그냥 벗은 채로 진행한다는 거다.
한국에서 많은 부인과 병원에서는 "여의사 진료"를 앞서 광고하기도 한다. 그만큼 남성인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꺼리는 여성들도 많다. 의사이기 전에 "남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거다. 프랑스에서는 진료실에 들어선 순간 "성별"이 아니라 그저 "의사-환자" 관계만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의사가 환자 치료를 위한 건데 몸을 보는 게 어떻냐는 생각일 거다. 이해가 된다. 우리 몸은 그저 의사에게 치료할 대상이었던 거다. 머리로는 프랑스에 왜 가운이 없는지 이해는 됐는데, 마음이... 언제나 벗을 때마다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한국에 많이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