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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청 Sep 10. 2022

명절이 싫다

화목한 가정은 누구네 이야기인가

나는 명절이 싫다

뭐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명절이 좋았고, 사촌들도 다들 어리고, 그냥 노는 게 좋고 할 때는 좋았지. 용돈도 받았었고.. 아 물론 지금은 뭐 용돈도 없고, 사촌들도 다 시집 장가가고, 뭐 결혼 압박 주고 그런 거 때문에 싫은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게 압박 주는 집도 아니다.


화목한 가정

아마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화목한 가정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목표인 것처럼 교육되어 왔을 것이다. 아 물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화목한 가정은 다들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명절만 화목한 가정이 아닐까? 일 년에 문자 한번 안 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잘 지냈니, 어쩌니 하는 게 어느 순간 너무 싫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좀 세게 싸워서 연락을 안 하는 동생을 찾으며 왜 안 오냐고 하는데 군인이다 보니 출동 나갔다고 명절 때마다 거짓말하는 부모님도 꼴 보기가 싫어졌다. 지금은 얼추 사정을 아는 듯 하지만..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언젠가부터인가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으셨다. 대기업을 다니다 IMF로 인해서 실직한 그런 안타까운 사정은 아니다. 내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생각하면 학원, 도서대여점, 건강식품을 하다 주식도 손을 대고.. 그러고 한동은 쭉 일을 하지 않으셨다. 몇 년을 안 했던 기억이다. 그러고 결국은 몸 쓰는 뭐 이것저것 하려고는 하셨는데 곧잘 금방 그만두고는 하셨다. 지금은 안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소의 일을 하고 있으시기는 한데.. 이 역시 곧 그만두시겠거니 했는데 오래 다니신다. 아마 이제 그만두면 진짜 큰일이다 느끼셨나 보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학기가 시작하면 서류 한 장을 가지고 가서 담임선생님께 제출을 했다. 그때는 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뭐랄까.. '실직 증명서?'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언젠가 한 번은 서류를 전달드리니 선생님조차 뭔지 모르고 멀뚱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받아 가기는 하셨는데..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수협을 다니시다가 아버지와 같이 학원, 도서대여점까지 하셨고..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은 이후로 이런저런 일을 하시기는 했는데 그게 다 다단계다. 나는 정말 다단계를 싫어한다. 몇 번을 말씀을 드려도 그 분위기가 좋으신가 보다. 물론 그 일로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일을 안 하실 때 사실상 가정을 이끄셨던 것도 맞다. 그래서 고생 많으셨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냥 그 일이 너무 싫다.


글을 쓰며 가만히 보니

친척들이 모이기 싫다는 것은 변명인 것 같다. 그냥 내가 부모님 보기가 싫은 것이 아닐까? 지금은 1인 가구로 혼자 살고 있는데, 집을 나와서 살기 몇 년 전부터 집에 있기가 싫었더랬다. 장기간 일 하지 않는 아버지로 인하여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고, 그 흔한 외식이나 가족여행은 다른 집안의 이야기였다.


자식새끼라도 살갑게 대하고 다른 집 자식들처럼 어디 여행 계획도 하고, 식사라도 모시고 했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집 안에서의 대화는 점점 끊기고, 나는 집에 오기 싫어 야근을 자처해서 하고, 주말은 억지로 이런저런 도시로 여행을 다녔었다.


그러다 운이 좋아 혼자 방을 얻어 살게 나오게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살갑지 못한 아들이다. 한 번씩 본가에 찾아가서 밥을 먹을 때면 항상 기본으로 술이 나오는 것이 싫었고, 서로 딱히 할 말이 없어 TV만 보고 있는 것도 너무 싫었다. 부모님은 서로 말도 안 나누고.. 내가 가도 그 정도인데 평소 집안 분위기는 안 봐도 뻔하다. 그러다 결국 동생 이야기 나오고, 뭐.. 그러다 결국 언성 높여 싸우고.. 엉망진창이구만.


명절이 싫은 게 아니었구나

글을 쓰고 나서 보니 그냥 우리 집이 싫었나 보다. 이번 명절도 가지 않았다. 어제 어머니가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었는데 자다 깨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이런 천하의 지옥 불효자 새끼가 있을까.


그냥 집안 분위기가 좀 좋아지면 좋겠다. 나도 남들처럼 부모님 모시고 어디 여행도 가고 싶다. 식사도 하고 싶다. 어디 나가서 밥 먹자 이야기를 예전에도 한 번씩 할 때마다 집에서 고기나 구워 먹자 하는 말이 나오는 게 싫다.


다음 명절에는 일가친척들이 만나는 자리에 내가 가고 싶었으면 좋겠다.


Image from Pixabay: https://pixabay.com/images/id-6036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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