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다. 오래간만에 아주 시원하게 눈이 왔다. 4일 동안 하늘에 구멍 뚫린 듯이 많이 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미 언질을 줘서 눈이 많이 와서 학교가 쉴 거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 캐나다에서는 눈이 많이 오면 학교가 문을 닫는다.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매년 학년이 끝날 때면 "올해는 학교를 너무 문을 닫아서 학생들 학업 성취가 예년보다 떨어진다"는 뉴스를 반복해서 보게 된다. 다만 이번처럼 많이 온 것은 토론토 지역으로 이사 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뉴브런즈윅 사람들에게 눈이 많이 왔다는 기준은 토론토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큰 눈이 내리면 학교만 쉬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근무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도로청소가 안되어 있어서 어차피 기차역까지 가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조금은 고맙다. 기왕이면 집에서 눈 치울 겸, 일도 빼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아닌가 보다. 이럴 때 정전도 되면 일도 빼주겠지만, 정전이 되면, 일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가기에 그냥 이 정도로 타협을 보도록 한다.
그렇게 집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데, 옆집에 차가 없다. 아침에 눈이 얼마나 왔나 구경 나왔을 때, 옆집에서 눈을 치우는 것을 보고, 아줌마가 참 부지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눈을 치우는데 그치지 않고, 눈을 치우고 차를 몰아 일하러 간 모양이었다. 아직까지 집 앞 골목은 발목 위까지 쌓인 눈 때문에 미끄럽기도 하고, 자칫 눈에 빠지면 낭패를 볼 터인데, 정말 대단한 용기다 싶었다.
눈을 치워본 사람은 다 아는데, 사실 눈 중에서 가장 치우기 힘든 눈이 제설차가 지나가면서 옆에 쌓인 눈이다. 이 눈은 일단 무겁고 단단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내린 눈을 치우는 것 하고는 달리, 힘과 시간이 5배는 든다. 그런데, 이 눈은, 내가 집 앞 차가 나가는 길(드라이브웨이)을 치워 놓으면, 꼭 내가 언제 눈을 치웠는지 아는 것처럼 등을 돌리자마자 제설차가 지나가며 입구에 눈을 던져 놓고 도망간다. "여기 이것도 치워봐"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또, 나는 "캐나다 사는 내가 죄인이요" 라며 눈은 치운다. 그런데, 그런 눈을 뚫고 옆집 아줌마가 출근을 했다.
사실 옆집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별로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한 번 있었는데, 그것도 우리 집 개가 옆집으로 도망가서,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개를 끌어안고 나눈 스몰톡이 전부였다) 옆집은 간호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주는 저녁에 나가서 아침에 들어오고, 어느 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나가고, 눈이 와도, 주말이어도, 일을 나간다. 사실 이번 대설에도 약혼자 핸드폰이 연신 울렸는데, 저녁에 내린 눈 때문에 다음 근무자가 집을 못 나서서 교대를 못해주는데, 너는 해줄 수 있을까? 하면서 급하게 일할 간호사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 "벼랑 위의 포뇨"를 보면, 소스케의 엄마가 노인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분으로 나온다. 마을이 잠길 정도의 큰 비가 내리는데, 아이를 집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놓고, 비가 그친 후, 다시 요양원의 노인분들이 걱정되어 요양시설로 돌아가는 슈퍼맨과 같은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소스케의 엄마가 돌아간 덕분인지, 요양원 할머니들은 모두 무사하고, 소스케와 포뇨는 장난감 배를 타고 엄마를 찾아 나서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지만, 실제 주변에서 그런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누군가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려 할 때, 누군가는 눈이 와도 출근을 한다. 약혼자는 눈이 많이 오면, 환자분들의 가족들이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이기적이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힘들어서 다른 이들이 편안할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한다. 누구는 일이 많아졌다고 그만둘까라고 고민하고 있는데, 누구는 일이 많아진 것보다,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2번 출근하는 걸 힘들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매일 같이 출근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 덕을 보며 살아간다. 누구 말처럼 괴팍한 날라리처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오늘은 아주 잠깐의 반성의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그나저나, 소금이 다 떨어졌는데? 내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