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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바뀌면 풍경이 바뀌지

by 스캇아빠

우크라니아 대통령 젤렌스키와 트럼프 간의 말싸움이 화제다. 개인적으로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결국 말이 많아지는 이유가 말싸움이라니, 이질감이 느껴진다. 전쟁에 어떤 명분이 있던, 누가 옳든, 그르든, 실제 사람이 죽고 있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작 화젯거리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전쟁이 아닌,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한테 갑질했다. 무례했다. 고맙다고 해라. 따위의 말들이라니, 젤렌스키가 무례한 행동을 당했고, 갑질을 당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 하려 해도, 왠지 계속 씁쓸함이 남는다.


내 가장 친한 친구(약혼자)와 회사생활하다 당한 갑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드라마 미생이 너무 현실적이라 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이야기했고, 친구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부하직원을 부르는 억양, 출신학교가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무시당하고, 옷차림 지적하고, 여자직원한테 임신했다고 뭐라고 하고 하는 모습들이, 미생에서 나온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회사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꽤 사실과 비슷했다는 데에는 친구도 동의했다.


미생에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중에 오상식 과장이 어렸을 적 친구를 만나 영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거래처 팀장이 어렸을 적 친구임을 알고, 계약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반갑게 만나지만, 친구는 이미 자신이 갑이고 오 과장이 을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일 쉽게 하려고 하네" 라며, 갑질을 하기 시작한다. 오 과장은 아이들이 사준 넥타이도 벗어주고, 친구라며 계약서에 쉽게 사인하는 것을 지켜보라고 불렀던 부하직원 앞에서, 오히려 계약을 위해 아무리 무시당하더라도 웃으며 과거 친구에게 기분을 맞추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 장면에서 오 과장은 무시당해도 웃고 있지만, 드라마를 보는 누구도 그 얼굴에서 진짜 웃음을 읽을 수 없었다.


처음 다녔던 중소기업에서 계약을 해주는 대신 자기 해외여행 보내달라는 작자도 봤었고, NHN에서 회의실로 불려 가 구두를 신고 다니라는 지적도 당해봤다. 캐나다에서 첫 직장에서는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고, 내가 낸 아이디어는 영어가 서툰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디어라 여겨지고 무시당했다. 간혹, 나는 내가 야만의 시대에 살았던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에 이 꼴을 당하지라고 생각하기도 하다가, 이 갑질의 고리는 고대 이집트 점토판에 "요즘애들 버릇없다"라고 쓰인 것처럼, 무구한 역사를 가진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갑질은 한국에서 많이 봤었지만, 캐나다에도 있고, 미국 백악관에도 있고, 모르긴 몰라도, 우크라이나에도 있을 거다. 갑질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아마도, 내 아이들 세상에도 있을 거라 거의 확신한다.

"오늘은 꼭 사표 낸다"는 아침마다, 되뇌는 주문이고, 어느덧 통장에 꽂히는 돈을 보며, "잘 참았어" 라며 나를 위로해 준다. "어디엔가 더 좋은 세상이 있겠지"는, 이민 오면서 철저히 환상이 깨져버렸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 반드시 복수한다라는 마음으로 마음 깊숙이 칼을 갈며, 오늘도 출근한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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