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의 선생님이 되고,
처음에는 수학만 가르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이 되었는데..
내가 맡았던 우리 반에는,
1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사람은-
거의 60세가 넘은 할머니 한 분과,
50세 정도 되는 아줌마 한 분이었다.
두 분 다 한글을 배우러 오셨는데..
얼마나 모진 세월을 살아오셨기에,
한글도 못 배우셨던 건지.. ㅠ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야학에는..
한글을 못 배운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못 배워서, 가슴에 맺힌 한이 많았던 만큼-
학구열도 높으시고, 궁금한 것도 무척 많으셨는데..
거의 딸 같은 나한테, 너무나도 깍듯하게-
"선생님"이라고, 한결같이 존대해주셔서..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짠- 해졌던.. 그런 기억이 있다.
왜소한 체구의 18세 소년 성철이는,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도 졸업을 못해서-
검정고시를 보려고 야학에 나왔던 학생이었는데..
(의무 교육으로 알고 있었던 고등학교는 커녕,
중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가정 방문을 가보니,
다세대 주택의 지하에 벌집처럼 따닥따닥-
많은 방들이 붙어 있는 그런 집의, 단칸방에..
병든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진동하는 연탄가스 냄새에 머리가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였고..
세상에! 이런 데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그런 데에서 사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ㅠㅠ)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출하셔서,
소식조차 알 수 없다고 했던, 성철이는..
언젠가부터, 갑자기 야학에 나오지 않아서-
염려스러운 마음에, 다시 찾아가봤더니..
그 사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성철이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력감과 함께,
내내.. 마음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귀여운 16세의 현경이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졸업을 못해서,
검정 고시를 보려고, 야학에 나왔던 학생이었는데..
낮에는 미싱 일을 한다고 해서,
그 환경이 궁금한 마음에-
호기심으로, 작업장에 찾아가 봤다가..
얼떨결에- 나도 1주일간,
미싱 보조 일을 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본의 아니게, 공장에 위장 취업을 했더랬다;;)
현경이는 천 먼지가 풀풀- 날리는 허름한 공간에서,
미싱으로 흰 골프 장갑을 만들고 있었고..
나는.. 현경이가 미싱으로 장갑을 완성하면,
가위로 실밥을 잘라서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보조 역할을 했었는데..
1991년 당시에, 골프 장갑 1켤레를 완성하면-
받는 돈이.. 백 원인가? 그랬던 것 같고..
1주일 동안 하루 종일, 미싱 보조 일을 해서..
내가 받았던 돈이 5만원이 채 안됐던 것 같다.
(당시에, 내가 1주일에 2번 - 2시간씩,
수학 과외 알바를 2팀 뛰어서 받았던
금액이 한달에 무려 80만원이었는데..
현경이가 하루 종일,
죽어라 미싱을 돌려봐야 받을 수 있었던
월급은 겨우 2-30만원 정도였으니..
실로 엄청난 빈부의 격차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ㅠ)
그래도, 현경이는 똑 부러지게 야무져서-
결국에는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 자격을 땄고..
나중에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까지 따서,
무척이나 흐뭇했던.. 그런 기억이 있다.
또, 우리 반에는- 나와 동갑이었던!!
여학생 삼인방이 있었는데..
서로 친구지간이었던 삼인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서-
야학에 나왔던 학생들이었다.
한번은, 셋이 동시에 가출을 하고,
야학에도 나오지 않아, 걱정을 하던 차에..
다른 반의 한 친구가 우리 삼인방이,
유흥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해서..
그 유흥가 일대를 밤새도록 다 뒤져서,
결국엔 찾아냈던.. 그런 기억도 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삼인방의 눈물을 봤는데..
그동안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있었던,
삼인방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들으면서..
나도 같이..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삼인방은,
나 같은 선생님은 처음이라면서.. (부끄;;;)
나를 무척이나 잘 따랐고,
야학에도 다시 열심히 나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내가 야학을 그만두고도,
계속 "선생님" 이라고 하도 불러대는 통에-
그게 너무 불편해진 내가.. (동갑이니까)
그냥 서로 편하게! 친구 먹자고 우겨서!!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가끔 연락을 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
(우리 삼인방은 모두..
결혼해서 아주 잘 살고 있다! ^^)
야학 교사를 했던 시절.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겨우 스무살 먹은 내가,
좋은 환경 덕분에, 공부만 좀 더 했다고-
선생님 소리까지 들으면서,
도대체 뭘 가르칠 수 있는 건지..
그럴 자격이나 있는 건지..
오히려 내가 학생(?!)이라는 사람들을 통해서
잔인한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웠다고.
그리고 나는.. 아직도 너무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나이라고..
그러면서, 학기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야학을 그만 두게 되었는데..
사실은, 정말 솔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그들의 삶을 더 깊숙히 알게 되는 것도..
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서 겪어야 할 일들도..
모든 게 너무 겁나고, 버거워졌기 때문. 이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너무 어렸다. ㅠㅠ)
그래서, 그런 이유로, 나는..
8개월에 걸친 야학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