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안타깝게도, 정희언니의 사진은..
내게 단 한 장도 남아있질 않다.
오로지 내 머리와 가슴 속에만,
그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이 사진을 보다가-
문득, 정희언니가 생각났다.
아마도, 내 옆에 있는 친구처럼..
정희언니도 뽀얗고 이뻤을뿐더러-
언니가 어린 나에게, 꽃과 풀을 엮어 만들어줬던-
꽃반지와 꽃팔찌의 기억. 때문이리라...
정희언니는..
영천에 사는, 우리 막내고모의 큰딸이었다.
친가 쪽 사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와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서-
어린 우리를 참 많이도 예뻐해줬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희 언니는..
내가 친가 쪽에서 제일 좋아했던,
막내고모의 딸이기도 했거니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미스코리아에 한번 나가보라고, 권할 정도로..
빼어난 고전적 미인이었던 언니는..
어린 내 눈에도, 너무나 천사처럼 예쁘고 착해서-
내가 특히나 좋아하고 따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진정 미인은 박복하고, 단명 한다고 했던가-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언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잠시 경리 일을 하다가-
이른 나이에.. 연애, 결혼을 했는데..
형부 쪽 집안이 좀 괜찮았는지..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는 바람에-
시부모의 시집살이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엄청난 남아 선호사상을 갖고 있는,
보수적인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첫 아이까지, 딸을 낳았으니..
진정한 ‘구박덩어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언니를 너무나도 걱정하는 막내고모에 대해-
엄마가 친척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같이 속상해했던.. 어린 날의 내 모습도 생각난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날벼락 같은 소식!
(딱. 이 사진을 찍었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정희언니가.. 죽. 었. 다.
자기 딸의 첫 돌을 겨우 이틀 앞두고-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집에서 목욕을 하다가..
연탄가스를 맡았고, 질식해서..
발견했을 때는, 목욕물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ㅠㅠ
(당시에, 대부분의 집은 목욕탕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화장실처럼 바깥에 있었고-
난방이나 온수가 전혀 안 나오는 구조라서,
목욕탕 안에다가 난로 같은 걸 피워 놓고..
그 위에 물을 끓여, 난방과 온수를 해결했다.)
소식을 들은 친척들은..
한 집에 살고 있었던, 악독했던 시부모의 무심함에-
너무나도 분통을 터뜨렸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진짜 도저히 이해는 안 된다.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사람이,
오래 안 나오고.. 또 분명, 무언가-
소리가 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집에서 손녀를 봐주고 있던 시어머니가,
그것도 손녀를 예뻐했던 것도 아니었던
사람이, 정말 그렇게 오래, 모를 수 있었을까?
죽은 언니의 몸에는, 살려고 발버둥을 쳤던..
난로에 심하게 데인 화상 자국이 있었다는데
말이다. ㅠㅠ)
언니는 그렇게..
사랑했던 딸의 돌잔치도 치르지 못한 채로,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은,
장례도 치르는 거 아니라며..
언니의 장례식은, 소리 소문 없이-
너무나도 조용히 치러졌고..
언니가 죽은 지 6개월도 안 돼서,
형부라는 사람은.. 너무 어린 딸을 핑계로-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재혼을 해버렸다.
그 후로는 아무도..
형부와 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나는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언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믿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어딘가에서,
딸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지도 몰라..
라고 혼자 상상했을 정도로-
그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그 때의 나는,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제와, 벌써 40여년 전에-
꽃다운 2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린..
우리 정희언니를 기억하며..
언니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긴 흔적인..
그 딸 - 조카의 소식이 정말 궁금해진다.
제발.. 어디서든.. 무조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제발...
오늘도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