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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17. 2022

한숨

스물여섯 번째 시

올까. 오지 않을까. 차마 손을 흔들며 떠나보내지는 못할 것 같은데, 무거운 추를 발목에 매달고 돌아가는 기분일 텐데, 익숙한 길을 걸어도 자꾸만 뒤를 돌아볼 텐데,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켜 둔 채 같이 베던 베개 위로 눈물을 흘려보낼 텐데, 몇 날 며칠을 술을 마시고,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나 혼자서 읊어만 될 텐데,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어도 그대에게 주고 남은 감정들만 오히려 아파질 텐데, 잊자. 잊자고 하면서 웃음을 보여도 남들은 나를 보며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할 텐데,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시를 써보려 해도 도저히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을 텐데, 흘려오는 노래에 괜스레 쓸데없는 추억들이 지나가고 시간은 그대를 잊지 못할망정 오히려 점점 내 목을 조여올 텐데, 아무리 화창한 날이더라도 내 세상은 멈춰 있을 텐데, 다른 사랑 따위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억울하고 미안하기만 할 텐데, 행여 다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반가우면서도 숨이 멈춘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결코 내 세상이 아름답지 않을 텐데, 아, 그대는 올까. 오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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