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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22. 2022

수선화

쉰두 번째 시

낡은 셔츠 차림의 소년이 맨발로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의 손에는 뿌리 달린 수선화 한 송이가 무겁게 들려있었다

아직까지 전하지 못한 이 꽃을 위해

이 꽃을 받으며 환히 꽃 피울 당신의 표정을 위해

무엇보다 수선화 대신 뜨겁게 떨릴 두 손을 위해

소년은 걷고 또 걸었다

까마귀 떼가 서쪽 하늘로 떠나고

짙은 향수병 같은 밤이 소년의 눈동자에 어둑하게 내렸을 때

오렌지빛 작은 세상들이 보이고

그 아래에서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숨바꼭질하는 소녀 앞에

유리조각이 만연한 바닥을 걷던 소년의 발도

구름으로 만든 이불을 뛰듯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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