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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22. 2022

형식으로 빚어진 초청 강연회

쉰다섯 번째 시

코끝에 녹슨 플루트 소리가 흐른다. 에어컨 바람이 대학에 걸린 푸른 휘장을 흔들고, 케이블 타이는 어설프게 스피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햇살은 커튼을 붉게 적시고 우리는 기울어진 화이트보드를 보며 화장을 고쳤다. 강연장 위로 십자가처럼 거미줄들이 걸려있고, 사선으로 쏘아붙인 형광등의 광선이 우리들의 눈동자를 꿰뚫었다. 상표를 종양처럼 달고 있는 알로에 주스, 생수, 그리고 뒤집힌 종이컵들이 바다거북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는 형식으로 빚어진 초청 강연회를 들으며 강사의 말을 다른 귀로 흘려보냈다. 강사의 일일 강의료에 대해 학생도, 교수도, 총장도 크게 관심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시를 썼고, 어떤 이는 휴대폰을 애무했고, 어떤 이는 오늘 밤도 이슬로 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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