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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29. 2022

어느 날 청춘이 죽었다

여든 번째 시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청춘이 컴퓨터 책상 밑에서 죽어있었다.


누가 청춘을 살해했을까. 어둡고 습한 동굴에서 마늘 대신 욕망이나 잡수시면서, 늙거나 죽은 이들의 뒤통수에서 속삭이는 것들이 알까. 아니면 여러 사랑을 갈아입으면서 유통기한 따위를 운운하는 욕망만 남은 벌거벗은 것들이 알까. 어차피 모두 죽는다며 이미 죽은 것과 죽어갈 것에 취한 것들이 알까.


빛바랜 분필은 한자 몇 자 적고 자신과 상관없는 미래와 청춘을 이야기하고, 죄 없이 벌 받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진짜 죄인들을 보며 뭐가 좋다고 낄낄거렸다. 죄는 말이야. 잡힌 놈이 죄인이지. 몇 년 지나 주머니 속에서 종잇조각들이 바닥날 즈음에 촌스러운 울상 지으면서 그땐 미안했어. 용서?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말 한마디에 누구나 회개받는 관대한 우물 안. 6살 배기 애도 정치판 냄새에 코를 부여잡지만, 정작 썩게 만드는 놈의 이름 한 글자도 모르는 따라쟁이들의 판. 주는 법보다 받는 법부터 배워서 지갑 속에 지폐 대신 사람 몇 명 넣고 다닌다. 종말론 이야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믿고 보는 위대한 팔랑귀들. 이미 종말하고 있는 나의 습관은 잊고 쓰레기별 책임을 모두에게 미룬다.


감히 누가 나서서 말해줄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살덩어리 따라 영혼도 죽어가고 있다고. 지금 이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또 한 번 청춘을 죽였다. 그래. 내가 청춘을 죽였다.


아아- 살생이 습관인 사람들과 결단코 아름다워야 할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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