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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01. 2022

오늘도 수고했어요!

아흔여섯 번째 시

가로등 불빛 아래. 세 번째 학원으로 향하는 어린아이. 잔뜩 취한 몸으로 구겨진 케이크를 들고 귀가하는 만년 과장. 분명 꿈을 쫓아갔는데 어느덧 현실에 쫓기고. 청춘 위로 낭만을 그렸는데 온갖 덧칠로 너덜너덜해진 토익 문제집처럼 불안으로 얼룩졌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청춘인데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었다. 적어도 나의 우주에서는 내가 주인일 줄 알았는데. 마지못한 중력 속에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별도 아닌 그저 모난 돌이었다. 


유통기한 지난 자기 계발서를 따라 엉뚱한 곳으로. 처음부터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유명 인사의 꾸지람으로. 얼마 없는 통장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그들에게 먹였다. 불가피한 선택 속에서 선택을 압박받고, 후회하지 말라는 질책과 거대한 책임만 빚처럼 번져갔다. 정작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쥐뿔도 모르면서.


하나의 경주에서 모든 마라토너들이 1등이 될 수 없듯이. 묵묵히 자기만의 호흡으로 산을 오르듯이. 1등이 아니더라도 완주의 기쁨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듯이. 그들이 정한 영광보다 자기 안의 성취가 더 중요하듯이. 마라톤의 결승선은 끝이 아니라 모든 시간 위에 있듯이.


오늘도 수고했어. 괜찮아. 그 정도면 충분했어.

그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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