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두 번째 시
야탑역 지하도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나물 파는 할머니가 젖은 박스 종이를 깔고 앉아
나물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행인들을 헤아리고
해진 정장 차림에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낡은 서류 가방 위로 쪼그리고 앉아
만 원어치 나물을 사며
우리 어매 생각나서 그렇소
그리운 주정을 뒤로한 채
나물보다 차가운 손으로
검은 봉지가 터질세라 꾸역꾸역
안사람 잔소리는 담아 가기 싫어서
그만 주소 그만 주소 아 됐소 아 고마 됐소
아저씨 떠난 자리에 전대 속 꾸깃꾸깃한 돈을 세고
그제야 냉이 씀바귀 달래 같은 표정 지으며
까무잡잡한 고무대야를 들고 가는 할머니 뒷모습에
손 시리니까 나중에 전화해
유난히 나의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걱정이 들리지 않았던 게
날이 추워서 그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