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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06. 2022

어쩐지

백스물한 번째 시

차라리 비나 바람이라도 내렸다면

차라리 어두운 밤이 잔뜩 깔렸다면

차라리 조금의 허기짐도 못 참는 그대가

평소처럼 그대를 더 생각했다면

차라리 낯설었던 그 길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그대와 마주 잡은 두 손을 믿고

내가 용감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이별의 긴장을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면

차라리 낡은 벤치 위에서 침묵을 지켰다면

차라리 자리를 비우는 그대를 믿지 않았다면

차라리 떠났다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면

차라리 그대를 이해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미련하게 그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지금도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어쩐지 유난히 날이 좋더라

어쩐지 그대가 나를 사랑해주더라

어쩐지 자꾸 미안하다고 하더라

어쩐지 잠깐 기다리라며 움직이는

당신의 걸음이 평소보다 빠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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