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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14. 2022

'안녕, 인공존재!' 나는 어떤 존재니?

배명훈,『안녕, 인공존재!』

존재를 밝히는 두 사람의 이야기


이경수와 신우정은 절친했다. 주변 사람들이 불륜으로 오해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신우정의 남편은 이경수와 친했고, 이경수의 부인 역시 신우정을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둘의 관계에 대해 정작 두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신우정이 자살한 후, 그녀의 남편이 이경수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을 만큼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녕, 인공존재!(2010 제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는 발명가였던 신우정이 자살한 후, 그녀의 유작이 이경수에게 전해지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남긴 작품은 전원 공급장치가 달린 '조약돌' 같은 물건으로 단순하면서도 요상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니터 없는 컴퓨터, 디스플레이가 없는 핸드폰 등 고정관념을 깨는 것들을 발명했다. 따라서 그는 그녀의 유작 또한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다. 다만 지금껏 그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그녀의 발명품들이 하나같이 대히트를 쳤다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개발한 발명품들은 주로 청각을 활용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녀가 모니터 없는 컴퓨터를 그에게 보냈을 때 '스피커는 필요하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듯이, 그녀는 시각을 대체할 수 있는 발명품을 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발명품은 달랐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조약돌은 작은 책으로 된 설명서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는데, 그는 이 설명서가 진짜 작품임을 단번에 깨달았다. 설명서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동시에 소멸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적혀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물과 행위가 가진 의미와 논리의 소멸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녀는 이 발명품을 만들며 어떤 생각을 했고, 또 어떤 말을 남기고자 했을까?


@ Photo By Pexels, Pixabay


우주비행사였던 그는 그녀가 남긴 조약돌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전원을 공급하고, 말도 걸어보고, 그것을 가지고 우주로도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것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분명 그녀는 죽은 것이 확실했지만,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로 소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비단 이경수와 신우정이 절친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그는 그녀의 존재를 이루는 것들 중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또한 조약돌이 어떤 존재인지 찾아 헤맸던 그의 노력들과 조약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서로 맞닿아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약돌은 갑자기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는 이것으로 이 인공존재가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알렸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도 조약돌처럼 뜬금없이 세상을 떠났고,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같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듯이. 그녀의 발명품 세상에서는 보인다고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다고 소멸했다고 결코 단정 지을 수 없다. 조약돌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었을까. 그녀는 왜 이것을 만들었을까. 무수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이 우주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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