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떠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남겨둘 남편을 위해 또, 남겨질 나를 위해. 굳건히 홀로 서리라 맹세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눈 녹듯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계절의 순환처럼 그리움은 다시 자라고 지기를 반복했다.
딸아이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남편이 떠나기 전, 딸은 결혼을 서둘렀다. 그리고 지금은 벌써 아이엄마가 되었다. 하루하루 전쟁 같은 삶에서 맞벌이하랴, 아이 키우랴 바쁠 법도 하지만. 딸아이는 기특하게도 내가 걱정되는지 주말마다 찾아왔다. 딸은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남편의 흔적을 보며 가끔 한숨을 쉬었다.
- 엄마, 이제 아빠 편히 갈 수 있도록... 놓아줘.
딸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가 쓰던 숟가락, 아침마다 그가 들고 있던 얼룩진 커피잔, 담배냄새가 아련히 배인 그의 코트... 이것들을 모두 버리면 정말 그를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이 기억들을 손에서 놓아야 남편도 미련 없이 편안한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사실 시도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남편의 옷을 박스 세게에 가득 담아서 아파트 의류수거함에 넣어버렸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국 의류수거함 사장님한테 옷을 돌려달라며 울며불며 사정했다. 그래서일까. 딸아이도 말만 이렇게 할 뿐, 정작 아이 아빠의 물건에 조금도 손대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졌다. 따뜻한 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가, 다시 남편의 옷들과 마주했다. 의미 없는 일인 줄 알지만 무심코 남편의 옷을 수선하고 싶었다. 왠지 그래야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수선집에 맡기기 전, 남편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무엇인가 손끝에 닿았다. 작은 쪽지였다.
쪽지에는 남편의 투박한 글씨체로 시 한 편이 적혀있었다. 한 단어, 한 문장 읽어갈수록 기억이 선명해져 갔다. 어느 날 새벽, 뜬금없이 커피가 마시고 싶어 잠에서 깨었다. 인스턴트커피라도 없나 하고 찬장을 뒤지던 나에게 남편이 비몽사몽 다가왔다. 잠이 달아나서 짜증도 날 법도 한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외투를 챙겼다.
- 그럼 마시러 가면 되지.
우리는 한밤 중, 문을 연 카페를 겨우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셨던 커피는 맛있었다. 아니, 맛있다는 표현보다 우아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커피잔 위로 달빛을 띄웠고, 남편은 냅킨 위로 시 한 편을 적었다. 남편은 등단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제법 단어들을 아름답게 나열할 줄 알았다.
늦은 밤, 나는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섰다. 그때처럼 왠지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갈 그이가 없다. 그때 커피 마시러 가는 길이 왜 그렇게 설레었을까.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날의 달과 닮은 달이 떠있었다. 달빛을 보니 남편이 더 그리워졌다. 그 순간이었다. 별똥별 하나가 달 옆을 스치며 길게 떨어졌다. 마치 그 별이 내 마음으로 조용히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도 없는 달 위에
꽃으로 피고 싶소
온 우주 위에
은하수로
당신의 이름을 쓰고 싶소
별처럼 빛나는 모래
아무도 없는 사막 위에
당신이 걷고 있다면
달에서 잠깐 내려와
별보다 아름다운
당신과 걷고 싶소
_ 황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