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린다. 숨을 쉬는 게 쉽지 않다. 가슴 안에 있는 오래된 펌프가 고장 난 듯 요동쳤다. 맥박을 재지 않아도 귀로 들릴 정도였다. 어쩌면 그럴만하다. 오늘은 내 인생의 첫 강연회니까. 아직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삼류 작가지만, 강연자로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행사비나 거마비는 따로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상관없다. 땡전 한 푼 받지 않아도, 이 강연회 자체가 내 성공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강연회장 입구에 도착하니, 문 앞에 조교가 서있었다. 멋쩍은 미소와 곁들여 악수를 청하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조교는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 화면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바쁜 일이 있나 보다. 조교는 내 얼굴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보내던 메시지를 천천히 전송했다. 한참을 서서 멀뚱멀뚱 기다리자, 조교는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고 말을 걸었다.
- 원래 교수님이랑 총장님도 오시기로 했는데, 일정이 있으신가 봐요.
아마 이런 행사에 명사들을 많이 접해봐서일까. 조교는 능숙하고 차분해 보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는 찰나, 조교는 강연장 문을 활짝 열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조교는 들어가라며 눈짓을 보냈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강연장 안으로 들어섰다.
강연장에는 몇 명의 대학생뿐이었다. 아마도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기에 바쁜 시간대였다. 그럼에도 내 강연회에 와준 학생들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졸업 후 다시 발을 들여놓은 캠퍼스와 강연회장은 그대로였다. 낡은 단상 위에 마이크 하나, 뒤에는 오래된 화이트보드 하나.
내가 들어서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아무래도 내 책을 읽은 모양이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의 시선들이 나로 향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사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몇 백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했지만... 이렇게 기대하는 학생들을 보니 역시나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떨리는 손으로 화이트보드에 내 이름을 적고, 마이크를 가볍게 두드렸다.
- 아, 안녕하세요.
아, 너무 긴장했을까. 일부 학생들이 순간 조용해졌고, 몇몇은 서로 귓속말을 나눴다. 이상할 만큼 내용이 들릴 정도로 속삭임이 크게 느껴졌지만, 요동치는 내 심장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크게 한숨을 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준비해 온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쓴 책의 숨겨진 내용, 책을 쓰게 된 배경, 그리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강연과 수업이 겹쳤던 것일까. 일부 학생들은 강연 중에 가방을 메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강연만큼 학생들의 강의도 중요하니까. 남아있는 학생들 중 대부분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말하는 강연 내용을 검색해 보는 것 같았다. 그때,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맨 앞줄에 앉은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아까부터 정말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대학생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교수들이 애정하는 제자였다. 맨 앞줄에서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교수들이 "수업 열심히 들어줘서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수업을 듣지 않았다. 저녁거리를 생각하거나 야한 소설을 끄적였을 뿐이었다. 아, 내가 이런 자리에 설 줄 알았다면,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 왠지 교수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맨발로 가시산을 넘듯 힘들게 강연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줍음이 많은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 청춘이란 수줍음이 많은 꽃. 이럴 때는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 그, 그렇다면 제가 질문 하나 해볼까요? 저, 저기 필기하던 학생.
아까부터 열정적으로 필기하던 친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내 손가락을 따라 그 친구에게 향했다. 나는 이 친구의 성실함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지목된 학생은 필기를 멈추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 저, 저요?
- 호, 혹시 노, 노트를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단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떨리는 손들 사이에서 두꺼운 노트 한 권이 전해졌다. 과연 어떤 말들이 적혀있을까. 내 강연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아니, 나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혹시 마지막 페이지에 사인을 해주면 이 친구가 나처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심장은 다시 크게 뛰기 시작했고,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나는 침을 크게 꼴딱 삼켰다.
그리고 노트를 펼치자,
코끝에 녹슨 플루트 소리가 흐른다. 에어컨 바람이 대학에 걸린 푸른 휘장을 흔들고, 케이블타이는 어설프게 스피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햇살은 커튼을 붉게 적시고 우리는 기울어진 화이트보드를 보며 화장을 고쳤다. 강연장 위로 십자가처럼 거미줄들이 걸려있고, 사선으로 쏘아붙인 형광등의 광선이 우리들의 눈동자를 꿰뚫었다. 상표를 종양처럼 달고 있는 알로에주스, 생수, 그리고 뒤집힌 종이컵들이 바다거북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는 형식으로 빚어진 초청강연회를 들으며 강사의 말을 다른 귀로 흘려보냈다. 강사의 일일 강의료에 대해 학생도, 교수도, 총장도 크게 관심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시를 썼고, 어떤 이는 휴대폰을 애무했고, 어떤 이는 오늘 밤도 이슬로 살 계획이었다.
_ 황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