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Mar 21. 2017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3.21.화. 일상의 기쁨)

가난한 시인처럼 고뇌하는 철학자처럼

이른 아침

조용히 일어나

식탁에 조그만 불을 켜고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치며

한손에 잡은 시집

어제 읽다만 시를 멀찌감치 펼치고

시 세편을 숙고하여 읽으며

교감이 되어 흡족한 마음에 미소와 함께 눈을 감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안식

별것이 아니구나 싶고

행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네요.


그리고

학교생활, 직장생활, 살림살이에 지친 가족들 

곤한 새벽잠에서 깰까바

까치발로 오가며

개수대에 밀린 설걷이를 하고

밥솥에 쌀을 씻어 앉히며

어제 끓여 놓은 카레와 짜장을 가스레인지에 뎁히지요.

카레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고

짜장은 딸들이 좋하하는 것


아직 해뜨려면 멀었는데

창밖으로 간간히 새소리가 들리고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인기척도 들립니다.


카레와 짜장을 긴 나무 주걱으로 번갈아 저어가며

한참을 그렇게 불조절하고 서 있었지요.


크거나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철학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더욱 가족들이 여유있어하고 기뻐할 일이라면

내가 조금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라도


아침에 먹을 사과 두개를 씻어서

식탁으로 돌아와 접시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 보다

작은 화첩에다 스케치를 했네요.


같은 사과 두개도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달리 보이고

자세히 관찰하니

여기에도 아름다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밝음과 어두움

향기를 내포한 빛깔까지...


조용한 아침의 일상

감사한 시간이군요.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이렇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구나 싶습니다.


아침에 먹으면 좋다는 사과

두개를 씻어서 식탁에 올려 놓고

한참을 들여다 보며

작은 화첩에 스케치를 합니다.


때깔좋은 것만 찾는 세상

화려한 것만 쫓는 세상

그래서 그것에 길드려진 사람들

흑백의 시대로 돌아가고픈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살찐 돼지가 되기 보다는 마른 소크라테스가 돼라!`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남긴 격언

풍요 속의 빈곤, 호황 속의 불황, 평등 속의 불평등, 부자들과 빈자들, 

그 통속적 개념의 경제 순환의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사회는 여지껏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여기 까지 왔는데, 

그들 양자적 대칭 프레임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여태껏 큰 재앙적 갈등이 없이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살찐 돼지들`(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만을 위해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마른 소크라테스들` (잘 못된 사회를 바로 잡으려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견제와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전

현관을 나서며 집사람이 하는 말

"시간있으면 꽈리고추 꼭지 따서 씻어 놓고

무우 채좀 썰어 놓으셔요~ 저녁 반찬 해먹게~"


꽈리고추 꼭지를 떼고 씻어서 채반에 올려 물을 빼놓고

커다란 무우 두개 채를 썰었지요.

쉽다면 쉬운 일이지만

두께를 가늠하여 둥굴게 썬 것을

여러개 포개어 채로 썹니다.


왼손의 겹친 무우편을 조심스럽게 잡고

오른손의 커다란 칼로 더욱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지요.

썰려나온 너무 두꺼운 무우 채는 하나하나 다시 쪼개고...

근 한시간을 집중하여 하자니

고개 떨군 어깨도 아프고

힘주었던 팔도 아픈데

수북한 무우채를 바라보니 미소가 샘솟습니다.



'이 새벽의 종달새' 블로그  http://blog.daum.net/hwangsh61

BAND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http://band.us/#!/band/6160544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