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
해군 군 생활 30여년을 마무리하고
인생2막으로 숲해설가로 근무한지 10여년이 되었습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내년이면 회갑인데 이 기회에 나를 되돌아 보게 되니 참으로 좋은 화두입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7살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 흑석동으로 이사
셋방살이하며 주인집 아이한테 멸시받는 모습을 보시고 많이 속상하셨다는 어머니
그 어머니 말씀 들으며 더 가슴 아리던 기억
공부 잘하며 부모 속안썩이고 반듯하게 자랐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방학때면 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로 내려가 그간의 도시 설움 달래듯
들로 산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고
개학 임박하여 서울 올라가기 싫어 하며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고 시골동네 소문나게 울었던 추억
학교생활하면서도 잘사는 잘난 친구들 보다 소외된 친구들과 함께 했고
버스표가 모자라도 어머니께 말씀 못드리고 이른 아침, 늦은 저녁 먼거리 걸어 다녔던 학창시절
그 시절
어느 집이나 여의치 않은 가정살림
수학여행 간다고 용돈 주시면 안쓰고 아껴서 어머니 브로치며 나무 쟁반 사다드렸던 참 반듯했던 시절
아버지 따라 군인 되겠다고 그러나 아버지 같은 군인 싫어 멀리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해
신체검사, 체력검정을 위해 어머니와 버스로 먼 여행하고 여인숙에 숙박하며 모자가 최종합격을 위해
노심초사하던 기억
사관학교 입교식에 오셔서 6주간 기초군사훈련 받는다고 깡마루고 시커멓게 그을리고 입술 부르튼 모습에
한없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서울 - 진해 먼 거리라 면회 한번 못내려 오셨다고
매년 가을 서울에서 3사체전한다고 상경하면 매주 바리바리 먹거리 해오셔서 동기생들이 푸짐하게 먹곤했던 추억
4년 내내 자랑스런 아들이었고 멋찐 소위로 임관하던 날도 그렇게 좋아하셨지요.
생도 2학년 때 공군사관학교 선배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결혼안한다'던 아들
좋은 집안에 많이 배우고 맏며느리감처럼 인물 후덕하다고 그렇게 좋아하셨던 어머니
해군장교 생활
1년의 반은 바다생활
서해 군산 먼 바다 어청도에서 신혼생활하던 때
아들 보신시킨다고 개소주내려 무거운 박스로 2개를 버스 3시간, 배 4시간 타시고 갔다주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위해서도 열심히 군대생활했습니다.
1986년 사관학교 4학년 후배들이 편승한 충남함에 갑판사관으로 근무시 원양항해를 다녀오며 드 넓은 대양에서 격었던 무서운 파도, 죽음의 공포에도 아랑곳 않고 허리에 밧줄을 묶고 거대한 파도 덥쳐오는 함수갑판으로 나가 바닷물 들어오던 환풍구 문을 닫고 와 모두의 안위를 도모했던 용감했던 기억
서해에서 순천함장으로 근무하던 2001년 6월
북한 동해 청진항에서 출항하여 제주도 영해를 불법적으로 침범하고 황해도 해주항으로 입항하려던 '청진2호'북한선박, 순천함보다 10배나 컸던 거대한 상선(후일에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 했던 사건)
'김정일 동지가 새로 개척한 항로로 항해할테니 남조선 해군은 우리의 위대한 길을 막지 마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꿈속에 청진2호 선장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트라우마)
백령도를 돌아 해주로 입항하던 종전의 항로가 아닌 백령도 남쪽 50여마일에서 북동방향 곧바로 해주로 입항하겠다는 폭탄선언
뱃머리도 안보이던 6월의 안개
작전사령부, 함대사령부 명령에 따라 새벽 4시경 레이더에 의지에 청진2호 항로 변경 저지를 위해 선박 앞을 차단기동하던 차에 북동방향으로 변침하던 북한상선에 들이받쳐 순천함 함수가 함몰되었을 때 20여년으로 군대생활이 끝나는가 했던 아찔했던 기억
한많고 우여곡절 많았던 바다생활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 3년여 주말 밤낮없이 일했던 선한 충성
군 조직사회의 진급 스트레스
동기생들이 나를 밟고 올라는 가도 나는 그들을 밟지는 못했던 순진함
함정 근무중 거대한 파도로 인해 3번의 죽을 고비
'거친 파도만이 강한 어부를 만든다'는 사관학교 선배들의 가르침
삶이 힘들고 괴로울수록 살아야겠다는 오기
그리고
언제나 자랑스런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누구나 그렇듯 열심히 살았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92 바로셀로나 올림픽
96 아틀란타 올림픽
올림픽 해마다 낳은 세 딸들, 올림픽 시스터즈
열심히 살아야 할 또 다른 이유였지요.
군생활 30여년 동안 2번의 섬으로의 이사 포함 27번의 이사
청진2호 충돌 사건으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아내
영욕의 세월을 마무리하고
동기생들보다 5년 앞서 명예 전역 하겠다고 했을 때도
나의 편이 되주었던 아내
더 크게 못되어 제대하게 되었다고 많이 우시던 어머니
모든 것 뒤로 하고
조직과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 치유하러
숲으로 들어온지 10여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돌이켜 보니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 제게는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극진한 정성'이다 싶습니다.
늘 내 삶을 응원해주시던 어머니
멘토이자 반면교사 역할을 하신 아버지
몇해전 아버지의 낙상사고로 가정에 그늘이 드리워졌을 때
그 때도 어머니는 당신 몸 아끼지 않으시고 병간호하셔서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되셨지요.
그리고
여든이 훌쩍 넘으신 어머니
한평생
남편 보필하시고
3남매 자식 건사하신다고
눈도
다리도
마음도
성치않으셔
요즈음은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시는데
당신께서는 절대 치매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나를 나답게 해주시는 어머니
내외분이 고향 전원주택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는데
"내가 아버지 간병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봐야지~ 하다하다 못할 때 그 때 요양원에 보내더라도...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것도 다~ 아버지 덕이지 않니?"
아픈 다리를 절룩이시며
"늙으면 다 이렇게 되는 거란다. 쉽게 죽는 줄 아니?
우리 걱정일랑 말아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늙은이들이 알아서 할테니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
그런
9남매의 둘째이신 어머니
아들이 군에서의 마음의 상처딛고
숲에서 이름있는 숲해설가로 고객들과 숲 체험을 통해 깨우침을 알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이모들에게 말씀하신답니다.
"우리 큰애 숲에서 근무하는데, 요즘같은 세상에 숲에서 근무를 하니 얼마나 좋겠니?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취미생활하는데 용돈처럼 급여도 주니 말이다."
오늘도 출근하여 체크인하고
계곡을 따라 아침 산책을 합니다
숲과 호흡하며 소박한 생각으로 돌아가는 시간
거짓스럽게 살아온 세월을 반성하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
삶을 되돌아 볼 때
어머니께서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고자
더욱 분발하고 반듯하게 살려 노력했던 것
이것이
나를 나답게 해준는 것이다 싶습니다.
그 거룩한 어머니를 뵈올 날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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