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뜻과 용기가 있는 '특별한 수탉'의 새로운 삶 개척기
여러해전
경북 울진 금강송 소나무로 유명한
금강송면 자연휴양림에 숲해설가로 근무하며
인근 산골에 숙소를 얻어 지내던 시절
커다란 소나무가 무성한 골짜기에
대여섯 가구의 화전민 후예들이 인정넘치게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묵던 황토방집은 70대초반의
몸집은 허리굽고 작으나 마음씨는 넓은 아저씨 아주머니의
장작불을 지펴서 난방을 하는 월세방이었지요.
외지 사람들의 내방이 뜸한 곳으로
순박하고 정겨운 분들이 밭농사 짓고 송이 따서
자식들 교육시켜 도시로 내보내고 호젓하게 사시고 계셨습니다.
젊어서는 도시로 나가 힘든 일하며 살기도 했지만
몸과 마음이 망가져 돌아오셨다는 분들
곱상한 아주머니는 허리도 굽고 사고로 오른손 손가락이 두개가 절단되어 없어
저와 마주할 때면 항상 구부정한 허리 뒤로 손을 젖히곤 하셨지요.
저녁나절 퇴근하여 돌아오면 출입문 난간에
오이, 토마토, 과일 등을 올려 놓아 잔잔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곳입니다.
또랑 건너 맞은편 자락에는 동갑내기 친구, 교장선생님 내외분이 살고 계셨지요.
우리 주인 어른께서는 교장선생님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당신은 못배워 내세울 것이 없는데 해박하신 교장선생님과 식사자리, 술자리 같이 하면서 많이 배우신다고 하셨지요.
늘 말씀 없이 술만 드시며 듣기만 하셨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말이 어눌하셨던 기억입니다.
자식들은 힘들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반듯하고 예의바르게 자라서 형제간에 우애가 깊고 효성들이 지극했지요.
어느 가을날 저녁
주인어른댁 부엌 마루에서 주인댁 어르신, 교장선생님 내외분들과
저녁식사 겸해서 하는 술자리에
송이로 담근 술이 나오고 교장선생님께서 가져오신 멧돼지 고기 안주삼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가 이어졌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비몽사몽간에 수탉 회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던 기억
날이 밝아 아침 산책을 다녀오던 길에
추운 겨울 대비해 월동용 닭장인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요.
커다란 수탉이 줄에 묶여서 다른 암닭들 먹이활동하는데
쭈뼛쭈뼛 고개 쳐들고 묶인 발을 힘차게 내딛는데
그럴 때마다 고꾸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시간 오보를 하도 자주 날려서
주인 아저씨가 밥먹을 자격없다고 묶어 놓으셨다네요.
여러해가 지난 지금
그 골짜기
올망졸망 작은 집들
주인댁 감나무 아래 평상
정겨운 분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닭의 무리중에 닭의 삶을 싫어하는 특별한 닭이 있었습니다.
좁은 닭장에 갖혀 주워지는 먹이에 만족하며 계란을 낳아야 하는 신세이거나
조금 형편이 나은 닭도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워도 어느 정도 자라면
언제 도살되어 고기로 식탁에 오를지 모르는 불안한 삶
같은 동물들인 고양이나 개들도 닭을 우습게 알고
심심풀이로 급습하여 놀라게 하거나 훼방을 하기 일수인데
그들은 주인으로부터 끔찍한 사랑을 독차지하니 참으로 서글프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닭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물심으로 봉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화가나기도 하지요.
살아서는 완전 식품이라는 알을
죽어서는 치킨이라는 누구나 좋아하는 육고기로 헌신하고
우리의 배설물은 훌륭한 퇴비가 되는데 말이지요.
또한 이른 아침마다 '날 밝아온다'고 목청껏 크게 울어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데도
여지껏 고맙다는 말 한 번 들어보지를 못했으니 참으로 억울합니다.
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은 '똑똑하지 못하다'는 표현을 할 때
'닭 대가리'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참으로 모욕적인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이 집을 나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하는데
저를 '특별한 수탉'이라 불러 주시고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어느 봄날 큰 뜻과 용기있는 닭에게 기회는 쉽게 찾아왔지요.
계란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오는날
우리의 특별한 수탉은 높은 울타리를 향해 힘차게 날아올라 트럭 짐칸에 무사히 안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트럭이 커다란 호수을 지날 때 다시 한번 날아올라 물가로 뛰어내려
특별한 수탉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물론 시작은 막막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닭장의 안전한 일상과는 다르게 많이 낮설고 위험한 환경이었던 것
우선 먹거리를 직접 찾아나서야 했는데 쉽게 구할 수도 없어
몇일을 굶다가 간신히 수초 뿌리를 구해먹을 수 있었지요.
먹걸이도 먹걸이지만 특별한 수탉을 대하는 눈빛에 반겨하는 눈치가 아니고
'못보던 것'이라며 남의 구역을 침입했다고 따돌림을 하여 더욱 서글펐지만
그래도 물오리 가족의 따뜻한 배려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물오리 가족이 먹걸이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이 호수의 위험요소에 대해서도 알려줬지요.
하늘에 나는 매보다도 밤마다 조용히 급습해 오는 들고양이를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특별한 수탉'은 친절한 물오리 가족 곁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했지요.
어디에나 천사는 있는 법입니다.
물가에서 생활하다 보니 건조한 땅에서 삶보다 불편한 것이 많아
집나온 것이 후회도 되었지만 큰 뜻을 굽히지 않았지요.
'의미있는 새로운 삶의 개척'
먹걸이는 가을철이 아니고는 대개 물속에 있었습니다.
수초의 뿌리부분은 훌륭한 영양분이 있었고 더욱이 얕은 물가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지천이었지요.
매번 자맥질을 하며 수초 뿌리를 캐내려 애를 썼지만 물만 들이키고 힘만 들었습니다.
더욱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자맥질을 하면 굼뜬 행동으로 데려 물고기들이 장난질을 하곤 하였지요.
거기다 한 번 물질을 하고 나면 깃털들이 젓어서 말리는데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장마철 많은 비가 내리고 물이 흘러들어오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곤 했는데
말 그대로 '비맞은 닭'신세였지요.
가을철은 수초들의 열매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어 행복했지만
겨울철이 되었을 때는 북풍한설을 피할 집이 없어서 춥고 배고프게 고생을 하였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었을 때 '특별한 수탉'은 호수 정령님께 간구했지요.
'새로운 호수의 삶을 개척하는 이 수탉에게 필요한 것을 갖게 해주십시요!'
세월이 지날 수록 깃털에 기름샘이 발달하여 물속 자맥질을 하여도 물이 깃털에 스멸들지 않게 되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발가락 사이 작은 돌기 막이 생겨서 물위를 헤엄쳐 다니기에 편리하게 변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깊은 밤 부시럭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시커먼 들고양이가 오리가족 둥지를 습격하려 자세를 낮추고 기어오고 있어
'특별한 수탉'은 목청껏 '꼬끼오~'라고 크게 외치며
들고양이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대어 몰아냈고 덕분에 오리가족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었지요.
우리 닭들의 '임전무퇴'의 싸움 기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귀와 눈이 밝고 용맹한 기질로 '특별한 수탉'은 호수에서 '근위대장' 역할을 하며
호수 동물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중받아
보람있는 삶을 시작하여
이 때부터 이 '특별한 수탉'은 '물닭'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