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봉선 세자매 이야기

깊은 숲 물봉선이 마을 화단의 '봉선화'가 되는 이야기

episode


지난 여름 어머니에게 무던히도 수난을 격은 고구마 순과 호박 잎


몇해전 아버님을 여의시고 홀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

내려가 뵈올 때마다 말동무 없어 적적하고 무료하시다며

작은 텃밭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시며 그 긴 시간을 소일하셨지요.

봄 여름, 상추로 푸짐한 식탁이 되었고


봄철에는 상추를 푸짐하게 따주시더니

하지 감자를 캐내고 나서 초여름부터는 풋고추

감자 캐낼 둔턱에 심은 고구마 싹이 자라 마디마디 기다란 순들을 매달았을 때는 고구마 순을

감자캐낼 자리에 심은 고구마 순


잔디밭 끝자락 둔턱에 구덩이를 서너개 파서 심은 호박

그 구덩이에 음식물 찌꺼기를 매번 묻어 주시니 호박줄기 기세가 대단하여 호박 잎이 잔디를 덮어

호박 잎 솎아준다고 따주신 크고 연한 호박 잎

호박 잎을 따서 다듬어 주시는 어머니


더위 가시고 9월, 10월 두달 동안 매주 고구마순과 호박잎을 교호로 따주셔서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우리 세자매 입맛

입호강하였습니다.


물론 고구마순을 커다란 자루에 넣어 집에 가져오면

그것을 일일이 껍질 깐다고 수고한 막내

그리고 양이 많다고 껍질 까서 말려서 반찬 궁한 겨울에 먹겠다는 아내지요.

가을 고구마 수확에 앞서 고구마 순을 따주시고



고구마 순

뜨거운 물에 약하게 데쳐서 이런저런 양념에 무쳐내면 단백한 맛, 씹는 식감이 일품

한편 고구마 순으로 김치를 담궜다고 하니

이번주 고향내려갈 때 어머니 갔다드리렵니다.

매번 수고했던 막내, 고추 썰고 고구마 순 껍질 까고


호박 잎

연한 호박 잎을 쪄서 따뜻한 밥 얹고 칼칼한 풋고추 양념장 얹어 먹으면 이 또한 일품


그런데

고구마 순, 호박 잎 좋아한다는 식구들 위해

매주 순과 잎을 따주시더니

정작

고구마 캐고

호박 수확할 때

"고구마 순과 호박 잎, 그렇게 따 먹었더니, 고구마도 잘고 호박도 잘게 달렸구나!"하시는 어머

무엇이든 챙겨주시는 어머니



storytelling


먼 옛날

깊은 숲 가을 도랑가에

붉은색, 노랑색, 흰색 물봉선 세자매가 청초한 꽃을 피우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붉은 물봉선이 "나는 이 골짜기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싶어!"

그러자 둘째 노란 물봉선이 "나는 한적한 이곳 생활도 괜찮은데 너무 심심해!"

세째 흰 물봉선은 "나는 언니들 따라갈게!"라고 답했지요.

깊은숲 물가에 사는 물봉선 세자매중 세째 흰색물봉선


어느날 아랫마을에 몇해전 아내를 잃고 홀로 딸아이와 사는 나무꾼이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하러 숲에 왔다가

내려가던 중에 꽃을 피운 물봉선들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물봉선 꽃가지들을 꺽어들고는

"먼저 간 아내가 좋아했던 꽃이구나! 너희들을 보니 아내가 더욱 보고 싶구나!"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마을로 내려오게 된 물봉선 세자매는 땔감위에서 여러날을 지세우다

볕좋은 어느날 꽃들이 시들어 맺힌 씨앗으로 탄생하였고

나무꾼의 딸인 어여뿐 봉선 아가씨 덕분에 작은 마당가 화단에 심겨졌지요.

"내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인데 시들어 안타깝지만 씨앗을 맺혔으니 내년 여름에 귀하게 또 만났으면 좋겠구나!"


씨앗으로 다시 태어난 세자매

땅속에서 겨울을 나며

"이런 어둡고 추운 경험은 처음이야! 꽃을 피우려면 이 고통을 참아내야겠지!"라며 서로 격려하며 긴 시간을 인내했는데 세째 흰 물봉선의 씨앗은 혹독한 추위와 건조함으로 이듬해 봄에 싹을 틔워보지 못하고 주검을 맞이했고

첫째와 둘째 물봉선만이 싹을 틔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막내의 슬픔을 생각하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봉선 아가씨의 물주고 퇴비주고 김매주고 하는 정성 덕분에

붉은 물봉선과 노란 물봉선은 화창한 봄날 무럭무럭 몸집을 부풀리고 키워 튼실한 봉숭아 줄기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둘째 노란물봉선



깊은 숲 물가에 피어난 붉은색, 노란색, 흰색 물봉선 세자매

딸 아이와 사는 나무꾼 손에 꺽이어 마을로 내려와 마당가 화단에 심겨져

이듬해 여름 붉은색 물봉선만 정열적인 꽃을 피웠고

그날밤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의 말씀대로

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이니 두 계절 지나 봄이 되었을 때까지

손톱에 아름다운 꽃 빛깔이 남아 있던 어느날

길 잃은 과객이 찾아와 귀한 인연을 맺었다 하여

그 후로 이 꽃을 숲속의 물봉선과 다르게 '봉선화'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맞이한 여름날

둘째 노란 물봉선이 뜨거운 볕과 가뭄의 목마름으로 시들어 죽어갔지요.

이제 첫째인 붉은 물봉선만이 역경을 이겨내고 정열적인 꽃을 피워 나무꾼과 봉선 아가씨를 기쁘게 했습니다.


붉은 물봉선이 꽃을 피운 그날밤 아가씨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

"내가 너와 네 아버지를 두고 떠나왔지만 마음만은 떠날 수가 없었단다.

이 아름다운 꽃을 보내니 나보듯하고 꽃으로 손가락을 치장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며

손톱을 물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지요.

아름다운 붉은 꽃을 따서 빻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머니의 뜻이라 생각하고 가르침대로 하였던 것입니다.

"손톱 빛깔이 꽃 빛깔 닮아 참으로 곱구나!"하시는 아버

생각이 많고 사려깊은 첫째 붉은물봉선


그렇게 여름가고 두 계절이 지나고 봄이 되었을 때까지 손톱에 물들인 빛깔이 아직도 남아 있던 어느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간다는 길잃은 과객이 늦은밤 찾아와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는데

봉선 아가씨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지요.

"과거시험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라며 앞길을 밝히는 덕담을 하시는 아버지 뒤에서

봉선 아가씨는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렸던 것입니다.


이후로 이 붉은 물봉선을 사람들은 '봉선화'라 칭하고

여름마다 손톱에 예쁘게 물을 들여

다음해 봄까지 꽃 빛깔이 남아 있어

소망하는 일들이 이뤄지기를 기원하는 풍속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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