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 검봉산자연휴양림
episode
제게도 수줍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하여 다른 동료들 보다 여유롭게 공부하며
목사님 아들인 친구를 따라간 교회에서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그녀는 서울 봉천동 허름한 문간방에 엄마와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녀
정류장에서 무작정 반나절을 기다리던 아련한 기억
저를 피하던 그녀는
자신의 친한 친구를 내보내 내게 의사를 전달하였지요.
'사는 것이 힘들어 연애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강직한 표현에 실망한 기억
사관학교 가입교를 앞두고 남자들의 군대가는 심경으로 불안해 하던 그 때,
그녀의 친구, 이름이 '연실'이었지요.
그 연실이와 대방동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뚝방을 거닐던 기억
친구의 근황과 진로 이야기 등
카톨릭 신자인 연실이는 오빠가 형편 어렵게 유학가 있는데다
자기까지 부모님 경제적 부담 안드리려
수녀원에 들어가려 한다고...
참으로 속깊은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힘들다는 해군사관학교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전 2월
지옥의 가입교 훈련 6주
3월 1학년 생도로 입교
더욱 험난한 bottom(배 밑바닥, 1학년을 지칭)의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강한 파도만이 강한 어부를 만든다'는 선배들의 구호아래
가혹한 스파르타식 훈련이 지속되니
밤이면 쪽잠자면서 '내가 꿈꾸었던 생활'이 아니라고 무단탈영을 도모하던 시절
1주일 마다 도착하는 연실이의 편지가 하루하루 버티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참 좋은 말
용기를 내게 하는 말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연인이라기 보다 동성 친구같은 어투에 어른스러운 의젓한 말, 잘쓴 예쁜 글씨체
힘들다는 1, 2학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이었지요.
3학년 올라가며 여유로워졌는데
그녀의 편지를 더 이상 받지를 못했습니다.
구도자의 길, 수녀가 되었는지...
생도시절
서울과 진해
졸업 임관후
육지와 바다
그렇게 40여년이 흘렀지요.
이제 멀리 돌아서 육지, 숲에 와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한 시대를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신도 무릎굻게 한다는 아주 작은 풀꽃
한적한 외진 곳, 오솔길가에 고개쪽으로 홀로 피어난 꽃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고
밤과 새벽 추위에 잎사귀를 저미고
그래도 '저를 보아주세요!' 합니다
참 고운 다섯장의 꽃잎
왼쪽 일찍 피어난 꽃잎은 벌써 갈무리 하고
오똑하니 쌍으로도 피어보고
셋으로도 피어 보네요
storytelling
먼 옛날
고개넘어 용하다는 의원에 다녀오던 엄마와 어린 아들
다리를 절룩이는 엄마 등에 업혀 오던 아들이 오솔길에 홀로 피어있는 꽃을 가리킵니다.
"엄마! 저기 노란 꽃이 피었어요."
"그렇구나! 아직 이른 철인데 예쁘게도 피었구나."
엄마는 절룩이며 허약해 보이는 아들을 노란 꽃 앞 가까이에 내려 놓았지요.
어린 아들이 병약하여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 뜸과 침으로 기력을 회복하려
매일 이 오솔길을 지나 고개를 넘어 오가는 것이었습니다.
"제비꽃같구나! 그런데 꽃색깔이 특별하게 노란색이네.
들녁에 피는 제비꽃들은 모둠으로 함께 피는데 꽃 색깔이 흰색 또는 보라색이지."
아들은 힘겹게 노랑제비꽃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노란꽃잎을 한참 바라보았지요.
꽃샘 추위에 서리를 맞은 듯한 작고 여린 꽃과 잎사귀를 보며 신기하고 안스러운 표정입니다.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엄마와 아들은 노랑제비꽃이 피어있는 그 오솔길에 머물다 갔지요.
어느날
노랑제비꽃인 제가
그 아이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날도 아이는 저를 보려고 걸어오다 엎어져서
아이와 저는 너무도 가깝게 마무보게 되었고
내가 내 모습을 처음보았던 날이었지요.
그 아이는 눈이 커서 맑은 눈동자에 제 모습이 비춰보였습니다.
아이는 한참을 내려다 보며 작은 손가락으로 잎도 만져 보고
내 꽃잎에 코를 가까이 하며 냄새를 맡으려 하는데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
"비재야! 그만 집에 가자구나. 어두워지기전에..."
그 아이의 이름이 비재였고, 나는 내 이름을 알려주지 못한 것이 서운하였습니다.
그런일이 있은 후
여러날이 지났는데 엄마와 그 아이를 한동안 볼 수 없었지요.
많이 보고 싶던 어느날
찾아 온 엄마와 아이가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왠지 그 아이가 내 말을 알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우리 꽃들이 하는 언어로 말을 걸었는데
놀랍게도 식물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멋찐 친구였지요.
나는 그 아이에게 내가 이 외진 오솔길에 오게된 이유를 이야기 하였는데
이 어린 친구는 나의 말을 이해하였습니다.
사실
저희 제비꽃 종족은 들녁 양지바른 곳에 모여살며 따뜻한 이른 봄에 흰색, 보라색 꽃을
함께 피우고 잘 익은 씨앗은 영양물질이 묻어 있어서 개미들이 굴로 물고 들어가
애벌레의 먹이로 활용하므로 우리 번식을 돕고 있지요.
참으로 은혜로운 개미입니다.
저는 꽃색깔이 그들과 달라서 어려움이 많았지요.
"저 노랑꽃은 우리와 모양은 같은데 꽃빛깔이 왜 저런 색일까? 참 이상도 하지!"
"그러게 자기 혼자 돋보이려는 발칙한 생각일꺼야! 참 보기 않좋네!"
많이 힘들었지요.
내가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과 함께 꽃 피는 것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흰색, 보라색 제비꽃들의 눈총을 감내하기가 힘들어
가을이 되었을 때
개미에게 부탁하였지요.
"나를 저 앞산에 살게 하실 수는 없나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어떤 노력이요?"
"일단 씨앗을 앞 산쪽으로 멀리 보내요. 그러면 내가 옮겨 보리다.
이제 우리 개미들의 터전을 앞산으로 옮겨 볼까!"
가을이 되었을 때
나는 잘 익은 열매꼬투리를 용수철처럼 잘 비틀어 볕좋은 날, 바람이 불었을 때
있는 힘껏 씨앗을 앞산 쪽으로 튕겨 보냈습니다.
그러자 개미들이 그 씨앗들을 가지고 앞산으로 먼길을 옮기기 시작했지요.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개미들의 부지런함을 믿었습니다.
마침내
숲 오솔길 개미 굴속에 저의 분신인 씨앗들이 자리잡게 되었고
개미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엄마 개미의 수고로움의 결실인 우리 씨앗에 묻은 감로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개미 아빠들은 감로가 없어진 씨앗들을 굴입구에 쌓아 봄을 기다리게 했지요.
그리고 따뜻한 봄날
저의 노랑제비꽃들이 피어났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감탄을 쏟아내었지요.
"대단하군요! 노랑제비꽃님! 저는 외로워 보이는 제비꽃님이 좋아요!"
예쁜 어린 친구가 말도 참 예쁘게 하니 참으로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지요.
그 어린 친구는 내게 말하더군요.
"노랑제비꽃님!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그리고 여러날이 지났는데
엄마와 아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궁금하여
오솔길을 따라 그 어린친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고개까지
저의 분신들을 보내게 되었지요.
그래서 해마다 노랑제비꽃이 오솔길 따라 고개까지 피어나게 되었는데
고개에서 그 어린친구의 집은 보이는데 비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지게를 진 남자와 비재의 엄마가 고개 마루, 양지바른 곳, 제 옆에 오더니
지게 위 둘둘 만 거적데기를 내려놓고 구덩이를 파고 묻는 것이었지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비재의 엄마가 절룩이며 다가와 하염없이 눈물 흘리고 하는 말이
"노랑제비꽃아! 너를 다시 보니, 살아생전 아들 생각이 더 나는구나!"
연약해 보이던 비재는 몇 해를 앓다가 노랑제비꽃이 피는 봄이 오기전 꽃나라로 가면서
'저를 저 고개, 노랑제비꽃가에 묻어주셔요!' 했다지요.
저는 너무도 큰 충격에 꽃잎이 바르르 떨리며
아픈 마음에 노랑 꽃잎을 마구 떨구었습니다.
내가 그 어린 비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봉분도 없는 어린 무덤가 주변에 노랑제비꽃으로 피어나는 것이었지요.
꽃! '천사가 전하는 하늘의 편지'
그 하늘의 편지를 잘 읽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