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이상을 참선중인 대왕소나무(옹달샘 숲 이야기)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 강원도 삼척 검봉산 자연휴양림

강원도 삼척시 임원항 일출(3.15.수. 0635)


동해의 소나무(적송)은 붉은 태양을 닮아 갑니다


episode


언젠가

여든을 넘기신,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께서

"할머니가 보고 싶구나!" 하셨지요.

저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정이 많으셨던 할아버지

시골 저희 집이 마을 끝이라

저녁나절

탁발하시는 스님네나 객이 오시면 사랑채에서 묵어 가게 하시고

밤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 하시던 할아버지


서울 손자 방학 때 내려왔다

개학 임박해 올라가는 손에 꼬기꼬기 5천원짜리 지폐를 쥐어 주시던 할아버지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뫼시고 살며 농사짓던 작은집이 서울로 올라오게 되어

어쩔 수없이 서울 저희 집으로 오셨지요.

땀과 눈물로 일궈 온 많은 전답 남겨두고, 늙으신 몸으로 그리운 산천 가슴에 묻고 떠나오셨을 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군요.


이제 내 부모님 그 고향으로 낙향하시니

자주 내려가 보는 나의 고향!


몇해 전

논에 모가 땅내 맡아 잘 자라던 5월, 부슬부슬 비내리던 아침나절 들녁 산책길

장군터 두마지기 논에

멀리서 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분이 일하는 모습이 보여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 할머니인듯 반가움에 바삐 다가가면서

'할아버지! 그 논 이제 우리 논 아니어요!' 되새기며 갔는데

커다란 백로 두마리였습니다.


서울 생활, 맏아들 내외에 맞춰 사시기 부담스러우시고 고향에서 작은댁 식구들과 편하셨던지라

서울로 이사한 작은집에 가셔서 머무르는 일이 많으셨지요.

가끔 서울가서 뵈올라 치면, 소일거리 잃어버리고 마음까지 놓아버린 초췌하신 모습에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습니다.

시골서 매 식사때 반주로 드셨던 막걸리대신 소주를 자식내외 몰래 숨겨놓고 따라주시던 할머니


많이 그리우셨을 시골 고향, 그리고 논과 밭

그 때는 나 바쁘다는 핑게로 고향에 한번 모시고 가보지 못한 것이 결국 한이 되었지요.


더 쇠약해지셔서

제 결혼식에 고종사촌 형에게 엎히시어 오셨던 할아버지

결혼사진에 많이 편찮으신 모습으로 남아계시고


임종하시던 날

출근 인사차 방 문여신 아버지를 앉히시어

"물좀 먹여 다오!" 하시던 할아버지

상체를 일으켜 드려 수저로 물을 몇 목음 드리시니

힘없는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며

"이제 됐다!" 하셨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셨다지요.


할아버지는 절름발이셨습니다.

한창 일하실 나이에 사랑채 지으시다 지붕에서 낙상하셔서 그리되셨는데

손자로서 그 다친 다리를 뵈온적이 없지요.

성치않으신 몸으로 지게도 한짐씩 거뜬히 지시고,

농사일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잘 지으셔서 '농사 군자' 소리를 들으셨지요.


큰아들 읍내 중학교 입학하자 하숙집 얻어주시고

절름거리시며 한달에 몇번씩 산고개 넘어 쌀이며 먹거리 지고 다니셨을 할아버지


어느해 서울 오셔서 손자들과 서울 구경하시며 제1한강교를 건너시다 흐뭇하셨던지

막내와 절름거리시면서도 뜀박질 놀이를 하셨던 할아버지


그 뒷둥거리는 다리로 험한 세상, 힘들지만 반듯하게 살아오시며

많은 논과 밭 일구시고 식구들, 자식들 잘 건사하셔서

동네 칭찬이 자자하셨던 할아버지


11월 할아버지를 고향 선산에 모시고

늦은 오후 산자락을 내려오며

자꾸자꾸 붉은 묘를 돌아 보았습니다.


왜? 60 훌쩍 넘은 이 나이에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것일까요?


'할아버지! 저 잘 살고 있는 것, 맞는가요?'



할아버지를 닮은

커다란 상처를 입고, 바위 위에서 힘겹게

천년 넘게 살아가는 소나무 이야기입니다

20230317_104809_HDR.jpg
img.jpg

임도 아래 커다란 바위 위에 범상치 않은 모습의 천년소나무

붉은 빛의 윤기있는 상부 굵은 가지들이 특별하고


img.jpg
img.jpg

바위를 뚫고 나온 곳에서 용트림하듯 기반을 다지며

천년을 기약했겠지요

서기 823년경 통일신라 41대 헌덕왕 시절, 통바위를 어떻게 뚫고 나왔을까요?

그리고 가지들의 용트림


img.jpg
img.jpg

불필요해진 가지는 스스로 제거, 외연확장은 절제하며 자기질서를 유지하고


img.jpg
img.jpg

시절악연인 톱과 불의 가혹함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로

안에서 부터 한서린 송진으로 내성을 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흔의 몸체로 푸른 하늘과 바다를 지향하지요


img.jpg
img.jpg

가까이 다가갈수록 경외감이 더해오고

상흔을 더듬으며 절절한 아픔을 위로해 드립나다


img.jpg

새로운 '시적이며 철학적인' 천년의 삶을 기원합니다


강원도 삼척 검봉산 자연휴양림 내, 1200여년을 살아온 대왕소나무(검봉송) mother-tree



storytelling


내 나이가 몇살인지 모르게 살았으니, 참으로 오래 살았습니다.

너무 오래 살아 먼저 간 이웃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마음으로

이제 잊혀진 채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 싶어

우호적인 감정으로 바라바주는 것도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속의 이 많은 생명체중에 그래도 저 처럼 긴 세월 살아오며

그 삶에 새겨진 흔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요.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씨앗으로 내려앉은 것은 봄바람 탓이었습니다.

먼 곳에서 날아와 생소한 곳에 터를 잡으면서 그나마 거대한 바다가 내다보일 곳이라서

기대를 하며 열악함을 이겨냈지요.


형편이 좋은 곳에 터를 잡은 다른 동료들은 시작부터 수월한 삶이었습니다.

양지바른 곳이거나 수북한 흙으로 양분이 충분한 곳이었지요.

내 삶의 바탕만 혹독한 터전인 듯했습니다.


그 먼 옛날 황량한 바위 위는 씨앗에서 싹을 틔우기도 힘에 겨워

여러해를 바위틈에서 은거하며 지내다

시절인연이 있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지요.


고난은 이제 부터였습니다.

비바람에 의지할 곳없어 마구 흔들려야 했고

따가운 햇볕에 목말라야 했으며

한겨울 폭설에 휘청이고 혹한에 내몰려야 했지요.

그 긴 천년 세월을 스스로 이겨내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역사로

통일신라시대 태어나 태조왕건의 고려를 거쳐, 6백여년의 조선왕조를 살아

임진왜란을 겪어야 했으며 4백여년후 또 일본의 침탈로 이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보았고

이후 피비린내 나는 동족간의 6.25동란으로 이 산하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했지요.


천년 넘는 세월동안 수 많은 산불로 인해 무수한 생명들이 붉은 화마에 타들어가며 내는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고

오랜 세월을 거쳐 시커먼 산자락이 신비롭게 회복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한 제 몸통에 난 톱자국의 상흔도 그 시절 많은 소나무들이 겪어야 했던 것이지요.

죽음에 가까이 가게 했던 상처의 몸이지만 제가 살아 남았던 비결은

커다란 바위의 터전 덕분으로 그 고난의 터전이 저를 살린 것입니다.

긴 세월 살아오며 혹독한 환경이라 양분이 부족하여 천천히 자라, 목질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고

단단한 목질이기에 불에도, 병충해에도 강했던 것이지요.

고통이 인내하게 했고 그 인내가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대단하지요.

바위(터전), 불(화마), 톱(상처)를 이겨냈으니...


사실

제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은

저 푸른 동해바다를 오롯이 보고싶은 욕망에서 였습니다.

욕망만 앞섰다면 터전을 다질 여유가 없이 키만 키워 웃자라 위험했겠만

바위 위 밑둥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아래 몸집을 불리다보니

제 나이와 덩치에 비해 키가 작게 자라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바다를 그리다 보니 동해에 솓아 오르는 붉은 태양빛을 닮아, 몸통이 붉은 색으로 변했습니다.

그나저나

바다 방향 주변 웃자란 나무들 때문에

아직 바다를 볼 수가 없어 더 살아야 할 듯하네요.


이렇게 말없이 오래살아도

'제 삶이 의미있는 것 맞겠지요?'





이전 25화'노랑제비꽃'의 수줍은 사랑(옹달샘 숲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