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세월, 잊혀진 추억, 벚꽃(옹달샘 숲 이야기)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 오래된 벚나무 같은 이야기

episode


30여년 전

진해 해군부대에 근무할 때

그 당시도 3월말, 4월초 진해는 온 시내가 벚나무 꽃대궐이었습니다.

해군 항공단 헬기 조종사이던 1년 후배 종수가 사고로 순직

남겨진 3살, 5살 남매와 젊은 아내

사랑하는 남편, 아빠를 잃고 하루 아침에 편모가정이 된 후배 가족

장례식장은 오열의 현장


모두가 가버린 뒤

남겨진 유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아빠의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남매

엄마가 접하는 하늘이 무너진 막막한 현실

남겨진 아내에게 꿈이었으면 하는 현실

시댁과의 유족 연금으로 인한 불화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지만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활 전선


짧은 위로와 격려

그후에 찾아오는 동료들간과의 괴리감

'해군 아빠의 후애'로 키우고 싶은 엄마의 소망으로

부대 앞에 수입용품점을 운영하던 종수 아내


저희 여식들과 또래라 아내와 가깝게 지내던 종수 아내

그간의 설움을 쏟아냈다고 하지요.

영결식장에서 보여준 동기애는 어디가고

알게 모르게 생겨난 동기생간의 배척


벚꽃 피던 봄

수입용품점 복도 건너 공간에 방을 들여 남매를 키우는 후배 엄마

제 아내가 찾아갔을 때 방바닥이 냉골이라 놀라고

시어머니가 밤늦게, 이른 새벽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며느리 감시하던 모멸감에 놀랐다고


제 아이 또래라 아내가 초등학교 입학 때 메이커 가방과 학용품을 사들고 갔더니

눈물 흘리며 한스런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시댁이고 동기생들이고 부대에서 아무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더라며

울먹였다는 후배 아내


세월이 많이 지나

아내와 벚꽃 가로수 터널을 지나며

나 몰랐던 아내의 옛 이야기를 듣고

참 좋은 일 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그 후배 엄마가

해군과의 연을 끊지 않고 아이들 잘 키우며

험난한 세상에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군요.


벚꽃이 떨어집니다.

봄날이 가고 있지요.

또 다시 봄은 오겠지만...


아름다운 시골학교가 있습니다

맞은 편에는 오래된 고목의 벚나무가 있지요

3월말 커다란 덩치에 비해 많지 않은 꽃망울들이 부풀어 오르고

멋스런 풍모에 솜뭉치같은 꽃들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을 닮은 꽃송이들



40여년 전 저 꽃 그늘에서 데이트 신청을 했지요

이른 아침의 몽환적 분위기


오랜만의 단비에 꽃비되어 내리니

처연한 모습입니다


storytelling


40여년전

초등 교사로 임용되어 첫 부임지가 이 아름다운 학교였던 아내

20대의 젊은 나이에 꿈과 열정으로 사랑스런 아이들과 함께 했을 소중한 시간들


그 아내가 60이 넘어서 부터 몸이 굳어가며 기억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인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지요.


군인의 아내로 30여년, 진급이라는 명제에 부딪쳐 마음고생하며, 잦은 전출입에 20여 차례의 이사,

없는 살림에도 3남매 반듯하게 키워내고, 몸 불편하신 시어머니까지 수발하다

쇠락해진 몸과 마음으로 몹쓸병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병명은 아는데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저는 가슴이 메어져 답답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물만 비오듯 흐르더군요.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왜 착한 아내에게 그런 병이 찾아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몇년을 용하다는 침과 뜸, 한약재까지 처방을 받아 보았지만

별 효염이 없었지요.


병세의 진행이 서서히 찾아오더니 60 중반을 넘기자 급격하게 빨라져 가족들을 당황시켰습니다.

다리 근육이 굳어져가며 걷는 것이 불편해지고 혀가 뻗뻗해져 말을 원활하게 할 수 없게 되니

집안 일을 각자가 분담하여 하게 되면서 가정에서 아내, 엄마의 비중이 얼마나 컸던지를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지요.


집안일이야 그렇다치고

아내를,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절박함에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무엇도 조급해지는 마음을 해소해줄 것이 없었고

집안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요.

가장으로서 결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것이지요.

아내에게 가고 있는 시간, 찾아오는 병세

얼마나 남았을 지 모르는 아내의 시간을 고려해

아내와의 추억 여행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로 여기 이 초등학교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 젊은 시절, 부대장님의 소개를 받았지요.

성질급한 마음에 이 초등학교에 근무한다기에 군복차림으로 방문하여 교실밖에서 얼핏보고는

마음에 들어 저 벚나무 아래서 데이트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 때도 하얀 벚꽃이 만발 했었지요.

단발머리에 흰 원피스가 하얀 벚꽃과 참으로 잘 어울렸었습니다.

40여년에 가까운 그 연분홍 추억은 기억할지?

휠체어에 힘없이 앉아 초점없는 눈빛으로 잔디밭을 응시하던 아내

요사이 흰머리가 더 늘어 백발이 된 아내

아직 냉기가 도는 아침나절이라 두틈한 스웨터 옷깃을 여미어 주었습니다.


흐드러진 벚나무 꽃 아래 섰지요.

"여보!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당신 처음 선생님 시작하던 그 학교야! 우리가 처음 만난 곳,

내가 당신에게 데이트 신청하던 그 벚나무 아래..."

제가 얼굴을 받쳐 벚꽃을 보여주자 갑자기 생기 돋는 눈망울로 희미하게 미소를 짓더니

아내는 갸녀리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흘러 제 손가락을 적시는데 가슴이 벅차며 울음이 복받쳐 터져나오더군요.

소리내어 '엉엉 ' 많이 울었습니다.

'모두다~ 용서해요! 모두다~ 놓아버려요! 여보!'

아내와 저는 한참을 벚나무 아래서 울고 또 울었지요.

엷은 봄바람이 불어 꽃잎이 눈물방울처럼 흣날립니다.


그렇게

아내의 봄날은 가고,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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