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꽃과 튤립나무의 대화(옹달샘 숲 이야기)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 검봉산 자연휴양림

episode


img.jpg 향기가 그윽한 은방울 꽃

작은 자태에 앙증맞은 꽃 피어나는 것이 귀엽고 귀한 향기도 맡을 겸

꽃대에 꽃몽우리가 맺힌 은방울꽃을 숲에서 분양해와 작은 화분에 심어 훈훈한 실내에 몇일 두었더니

필요 이상으로 잎사귀도 커지고 꽃대도 더 길어지며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온기가 식물에게 참으로 중요함을 새삼 깨우치네요.

그런데 실없이 커진 잎과 꽃대

불안하게 꽃을 피웁니다.


잎사귀 빛깔도 더 연해진 듯하고

꽃 향기도 더 순해진 듯하여

괜한 욕심으로 야생 터전에서 진한 연두색과 꽃 향기로 살아갈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이네요.


척박한 환경에서 천천히 자라나야

빛깔도 더 선명하고 향기도 더 진하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습니다.


쉽게 빨리 자라는 것은 그만큼 야물지 못하고 무디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삶도 그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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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커다란 목백합나무(튤립나무), 왼쪽 안내 표지판 아래는 튤립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img.jpg 훤칠한 키의 큰키나무 멋스럽게 자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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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


이곳 숲에서 자라는 나무와 달리

저(튤립나무)는 원래 이곳 숲속 태생이 아니었습니다.

20여년전

휴양림 개장 기념으로 관리사무소 근처에 심겨져

외로운 삶이 시작되었지요.


숲에서 군락으로 자라는 많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저를 숲의 식구로 받아들이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숲속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도

근원적인 물음과 외로움을 어쩔수 없었지요.


'왜 나만 홀로 이곳에서 자라게 되었는가?'


그러던

어느 맑은 날

하늘에 떠가던 흰구름이 전하는 놀라운 이야기

저(튤립나무)에게 엄마나무(mother-tree)가 멀리서 소식을 전해왔던 것입니다.


저의 외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엄마나무가 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오다

숲속 정령의 도움으로 눈물겨운 선물을 준비했던 것이지요.

엄마를 닮은 꽃을 보냈다고 했고

그 꽃을 보며 엄마를 대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전에 없던 일로

휴양림 직원들이 지난해 가을

주차장 건너, 저의 맞은 편에 꽃밭을 일군다고 열심이었지요.


그리고

올해 따뜻한 봄 어느날

하늘빛을 닮은 싹을 틔우더니

생명의 결정체인 그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이름하여 '튤립 꽃'

그 붉은 열정의 꽃빛깔과 그 자태에 넋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img.jpg 4월 초 잎과 잎사이에서 꽃몽우리가 올라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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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계속)


사실 엄마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단다.

떠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니?

이 광활한 초록별 지구에서 변하지 않는 거스를 수없는 절대적 명제가 있다면 '누구나 끝에는 떠난다는 것'이란다.

엄마는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며 겪은 환란을 통해 더욱 튼실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었지.

결국 그 고난과 역경이 엄마를 숲속의 mother-tree로 키워냈으며 이렇듯 엄중하고 반듯하게 숲을 이끌게 하였단다.

어떻게 오랜 세월 다양한 체험을 하지 않고 뭇 생명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겠니?

감사한 일이란다.

숲속의 정령 그 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으니까.


너를 그 먼 곳, 외로운 숲에 보낸 것도 숲의 정령과 엄마의 마음이 모아져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그런데 엄마의 선물을 받았는지 궁금하구나!

엄마와 너의 이름이 튤립나무인 것이 내가 보낸 그 꽃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이해하거라.

참으로 오묘한 숲의 조화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튤립 꽃을 참으로 좋아했는데 수많은 세월 그 아름다운 꽃을 연모하다 보니

엄마의 잎사귀와 꽃이 그 꽃을 꼭 닮아 가더구나.

비록 너의 장성한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구름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튼실하고 멋지게 자랐음을 알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단다.


이제 하늘의 마지막 뜻이 내게 다가오는 듯하구나.

그 튤립 꽃이 시들면 엄마의 삶도 갈무리 될 것이다.

그 때까지 엄마를 대하듯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면 한다.

서로의 마음이 소통하면 모두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시작이며

초록별 지구에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걱정하고 있단다.

네가 짧은 기간에 그렇게 멋진 나무로 성장했다는 것을...

엄마는 여건도 그랬지만 어려서부터 자라면서 천천히 느리게 자랐단다.

느리게 자란다는 것은 우리 나무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지.

인고의 시간이지만 그 인고의 시간을 격어 내야만 천년을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 수 있었단다.


부피와 크기에 앞서 먼저 뿌리를 깊숙히 내려 근본을 다지려 노력했고

뿌리의 기반을 다진후 목질을 단단히 해 병충해를 이겨내고 세찬 비바람으로 부터 버텨낼 힘을 길렀지.

허우대만 키워서는 숲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없단다.

나 보란 듯한 멋스러움은 허망한 사치에 불과함을 명심하거라.

또한 너를 도외시하는 숲의 생명들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해야 됨을 잊지 말거라.

그들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


이제 엄마는 먼 기억을 잃어가고 맥박은 더욱 느려지며 혼미해지려 한단다.

너는 나의 마지막 분신이기에 너에게 내게 남은 오래된 마지막 축복을 내려주마!

숲의 '가난한 시인처럼 고뇌하는 철학자'처럼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단다.

잘 살거라!

내가 잘 아노라!

내 아들아!


img.jpg 튤립꽃이 다 지고난 5월 중순 튤립나무 꽃이 잎과 잎사이에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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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계속)


우리의 주인공 튤립나무는 구름이 전하는 엄마나무의 뭉클한 이야기를 들으며 몸으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나는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나무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요.

엄마나무가 그립고 존경스러웠으며 튤립나무라는 내 이름이 자랑스러웠지요.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며 우울함이 사라지고 희망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주차장 건너편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튤립 꽃을 내려다보니 한없는 사랑스러움으로 다가왔지요.

엄마의 넋이 서려있는 꽃, 엄마의 삶과 이야기가 녹아있는 꽃, 그래서 한시한때 촌음이 아까웠지요.

왜냐 하면 꽃의 생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꽃을 잃는다는 것은 엄마를 잃는 것이고 엄마를 잃는 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튤립 꽃과 대화를 시작했지요.

"여보세요! 튤립 꽃님! 참으로 반가워요!"

"아! 네~저를 알아 보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저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니까요."


새 날이 밝아오는 아침의 튤립 꽃은 참으로 우아하고 경의로웠습니다.

꽃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싱그러운 아름다움의 극치였지요.

왜 이 꽃을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알 것 같았지요.

그러나 아침은 짧았고 다정했던 햇살은 뜨겁게 변하여 튤립 꽃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였지요.

뜨거운 햇님으로 부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튤립 꽃은 감사한 눈빛을 보냈고 저는 내가 엄마나무의 넋에게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 꽃은 바로 엄마였으니까요.


밤이 다가오자 숲속의 기온이 낮의 기온과는 다르게 영하권으로 내려가 튤립 꽃을 또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커다란 잎사귀를 떨구고 바람의 힘을 빌어 튤립 꽃에게 보내어 그 튤립 꽃을 감싸주었지요.

밝은 달님도 저의 정성에 힘을 보태 따사로운 기운을 내리 비추어 주었니다.


한낮 햇살이 강하지 않은 아침 저녁으로 튤립 꽃과 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 튤립 꽃은 아주 작고 여리었지만 마음과 품격은 엄마와도 같이 자애롭고 포근했습니다.

아! 그러나 어느 봄날 짖궂은 봄비가 내리던 날 그 튤립 꽃은 고개를 떨구고 꽃잎을 한 잎 한 잎 떨구며

꽃의 생명을 다해 갔지요.


참으로 가슴아팠습니다.

그래서 많이 울었지요.

그리고 엄마나무의 삶이 마무리 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너무 놀라 남모르게 조용히도 울고 소리내어도 울고 또 울며 밤새워 커다란 많은 잎사귀를 마구 흔들며 흐느꼈습니다.

흐느끼던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을 때 지나가던 구름이 우울하게 전하던 말

'엄마나무의 장엄한 주검'에 대하여


그리고

엄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몸집을 키우기에 앞서 뿌리를 깊숙히 내려 근본을 다지고 뿌리의 기반을 다진후 목질을 단단히 하라는 것

허우대만 키워서는 숲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숲의 다양한 생명들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라는 것


한편 주차장 맞은 편 튤립은 꽃을 떨구고 헬쓱한 모습으로 애써 밝은 표정인 듯하려 했지만 제가 말했지요.

"너무 애쓰지 말아요. 튤립님! 저도 이제 삶의 이치를 이해합니다."


그후로 우리의 튤립나무는 주변의 생명들과 더욱 소통하며 유쾌한 마음으로 삶을 이어가면서

의미있는 나무의 삶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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