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Dec 13. 2023
헤르만 헤세 '나무들 Baume'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다.
나무들이 크고 작은 숲에서 종족이나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면 나는 경배심이 든다.
그들이 홀로 서 있으면 더 큰 경배심이 생긴다.
그들은 고독한 사람들 같다.
어떤 약점때문에 슬그머니 도망친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킨 위대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우듬지에서는 세계가 속삭이고 뿌리는 무한성에 들어가 있다.
다만 그들은 거기 빠져들어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오로지 한가지만을 추구한다.
자기 안에 깃든 본연의 법칙을 실현하는 일, 즉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만 힘쓴다.
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보다 더 거룩하고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고 벌거벗은 죽음의 상처가 햇빛속에 드러나면, 묘비가 되어버린 그루터기에서 나무의 역사 전체를 읽을 수 있다.
나이테와 아문 상처에는 모든 싸움, 고통, 질병, 행운, 번영 등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근근이 넘어간 해와 넉넉한 해, 견뎌낸 공격, 이겨낸 폭풍우 들이 쓰여 있다.
가장 단단하고 고귀한 목재는 좁다란 나이테를 가진 나무라는 사실, 가장 파괴할 수 없고 가장 강하며 모범적인 나무의 몸통은 산 위 높은 곳, 늘 위험이 계속되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사실을 농부네 소년도 안다.
나무는 모두 성소이다.
그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학설이나 특별한 비법을 설교하지 않고 개별적인 것에는 무심한 채 삶의 근원 법칙을 이야기한다.
한 그루 나무는 말한다.
내 안에는 핵심이 있어 불꽃이, 생각이 감추어져 있지.
나는 영원한 생명의 생명이다.
영원한 어머니가 나를 잡고 감행한 시도인 던지기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내 피부의 맥과 형태, 우듬지의 가장 작은 잎사귀놀이, 그리고 껍질의 가장 자그마한 흉터도 단 하나뿐이다.
인상적인 유일무이함으로 영원성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이 나의 직분이다.
한 그루 나무는 말한다.
나의 힘은 믿음이다.
나는 조상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해마다 내게서 생겨나는 수천의 자식들에 관해서도 전혀 모른다.
나는 씨앗의 비밀을 끝까지 살아낼 뿐 다른 것은 내 걱정이 아니다.
나는 신이 내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안다.
내 의무가 거룩한 것임을 믿는다.
나는 이런 믿음으로 산다.
우리가 슬픔 속에 삶을 더는 잘 견딜 수 없을 때 한 그루 나무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하렴! 나를 봐봐! 삶은 쉽지 않단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아. 그런 건 다 애들 생각이야. 네 안에 깃든 신이 말하게 해봐.
그럼 그런 애들 같은 생각은 침묵할 거야.
넌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에서 너를 멀리 데려간다고 두려워하지.
하지만 모든 발걸음 모든 하루가 너를 어머니에게 도로 데려간단다.
고향은 이곳이나 저곳이 아니야.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네 안에 깃들어 있어.
저녁 무럽 바람에 솨솨 소리를 내는 나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방랑벽이 마음을 휩쓴다.
고요히 오래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방랑벽도 그 핵심과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언뜻 생각나는 것처럼 고통을 피해 멀리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삶의 새로운 비유들을 향한 동경이다.
그것은 집으로 데려간다.
모든 길은 집으로 데려가는 길, 모든 발걸음은 탄생이고 죽음이며 모든 무덤을 어머니다.
우리가 자신의 철없는 생각을 두려워하는 저녁때면 나무는 속삭인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 사유의 짧음과 빠름과 아이 같은 서두름은 비할 바가 없는 기쁨이 된다.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는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믿고 다른 무엇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