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젊은 선비의 소원을 들어준 천남성 꽃
episode
바다 같은 진흙탕 길
1805년 늦가을 맏아들 정학연이 강진으로 두번째 걸음을 했다.
유배 직후인 1802년 봄에 잠깐 다녀간 뒤 근 4년 만의 걸음이었다.
정학연은 이미 스물세 살이었다.
아버지께 필요한 물건과 평소 좋아하시던 먹을거리를 봇짐에 꼼꼼하게 쌌다.
어머니께 하직인사를 올렸다.
눈물만 글썽일 뿐 별말씀이 없으셨다.
9월 19일에 종 석이와 마재를 떠났다.
그해 마늘이 풍작이었다.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겨우 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당나귀도 한마리 빌렸다.
아직 갈기도 채 나지 않은 어린 녀석이었다.
먼저 서울에 들러 몇 곳에 연통을 넣고, 물건을 몇 가지 더 챙겨서 길을 떠났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안 그래도 선듯한데 비까지 왔다.
길이 공주 지경으로 접어들어 그곳의 역참에서 짐을 풀었다.
그날 밤 처정처정 내리기 시작한 비가 밤새 그치지 않았다.
아침에 길을 내다보니 진흙탕의 바다였다.
어린 당나귀는 진창에 발을 묻고는 비척대며 걸음조차 떼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내려서 걷자니 발목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묻혀 형색이 더욱 가긍했다.
이러구러 15일 만에 강진에 닿았다.
10월 3일이었다.
옷은 진흙범벅이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거지꼴로 읍내를 지나니 고을 사람들이 혀를 차며 수군거렸다.
자세히 보니 내 자식일세
10월 3일 저녁, 다산은 10여 일 전 제자 황상과 함께 다녀온 정수사 나들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둑해져서 호롱불을 밝히려는데 방문 밖에 인기척이 났다.
- 뉘시오?
- 접니다.
- 저라니?
- 학가입니다. 아버님!
다산이 놀라 문을 벌컥 열었다.
텁석부리 장정 하나가 문밖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다산은 말을 잊고 멍했다.
한참 지나서야 입을 뗐다.
- 네가 정녕 학가더냐?
- 절 받으소서. 이리 늦게 찾아뵙는 불효를...
절 올리는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움직일 때마다 방바닥에 마른 흙이 푸석푸석 떨어졌다.
- 이 진창을 뚫고 왔더냐. 기별도 없이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이 도무지 낯설어 자꾸 얼굴을 본다.
어색하다.
둘은 막상 할 말이 별로 없다.
아버지가 한참 만에 화난 사람처럼 묻는다.
- 기별이나 하지 않고서. 집안은 무고하고?
- 예.
부자의 대화는 자꾸 토막토막 끊어졌다.
창밖으로 그 새 매서워진 초겨울 바람이 윙윙거렸다.
아버지의 눈길이 아들의 옷자락에 자주가 멎었다.
아들이 눈길을 못 견뎌 먼저 말했다.
- 도중에 비가 와서 길이 질었습니다. 게다가 나귀가 진창에서 나부대는 바람에.
아버지는 불쑥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아직도 갈기도 채 솟지 않은 어린 당나귀 한 마리가 배가 홀쭉한 채 떨며 서 있다.
- 저걸 타고 예까지 왔더란 말이냐?
- 그래도 탈 만합니다.
어린 당나귀의 몰골을 보며 혀를 차던 아버지는 옹색한 살림살이가 보이는 듯해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아들은 허리가 결리는지 상체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했다.
- 먼 길에 춥고 시장하겠다. 옷을 갈아입고 씻거라.
맏아들 정학연이 유배 후 두번째로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이다.
학가는 훗날 학연으로 바꾸기 전의 이름이다.
storytelling
남쪽 경상도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선비가 저녁나절 험준한 문경새재에 이르러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여러지역에서 올라온 과객들이 과거시험에 나올 시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떠들썩하였지만
우리의 젊은 선비는 용모 반듯하듯이 마음가짐도 그러하여 가볍게 귀 기울이지 않고 허튼 말함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그리고 이른 새벽
남들보다 일찍 한양을 향해 출발하여 새재길에 접어들어 어두운 산길을 새벽 달빛에 의지해 오르는데
5월의 서늘한 새벽공기에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보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고
그 붉은 여명속에 저 앞쪽으로 특이하게 생긴 화초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산삼처럼 생긴 줄기며 잎사귀, 그 복엽 아래 뱀머리처럼 생긴 꽃같은 것이 굽어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신기하여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관찰하며
"참으로 묘하게 생긴 꽃이구나! 무탈하게 자라나서 좋은 결실 얻기를 기원하마!"하였지요.
길을 가는중에도 그 꽃이 자꾸 뇌리에 남아 이상하다 싶기도 했습니다.
과거시험에 대비해 없는 살림에 낮에는 농사지으며 밤에는 공부 열심히 하여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앉고 상경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실력과 과거급제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름있는 스승님에게 배워 인맥이 있는 것도
재력이 있어 귀한 서책을 구매해 마음껏 보아온 것도 아니어서
난해한 과거 시제에 나름 배우고 익힌 것을 토대로 서술하였으나
낙방을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허탈한 마음이 자리잡고
고향 사람들의 실망해 하는 모습이며
뒷바라지하신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귀향길이 주저되어
생전 처음 한양 올라온 김에
세상구경삼아 서너 달을 한양에 체류하다 초 가을이 되어 낙향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문경새재 길에서
지난 5월에 보았던 그 희귀한 화초를 보았던 곳을 지나는데
잎과 줄기는 여전한데 꽃은 형편없이 시들어 있었지요.
꽃자루 밑을 만져보니 열매를 맺지 못한 쭉정이였습니다.
'네 신세도 내 신세같구나!'
그래도 귀한 화초라 생각되어
흙과 함께 조심스럽게 채집해 한지로 꾸려 봇짐에 챙겨서 귀향하여
집 뒤켵 장독대 옆, 볕 잘 드는 곳에 정성껏 심어 놓았던 것이지요.
이듬해 봄
이 귀한 화초는 더욱 생기발랄하게 싹을 틔우고 희귀한 꽃을 피워
마을 사람들의 화제의 귀물이 되었습니다.
화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가
한의원 김첨지가 한방 책자를 뒤지고 뒤져서 '천남성(天南星)'이라는 것을 알아냈지요.
하늘 천, 남녁 남, 별 성
하늘에서 가장 양기가 강하다는 남쪽의 별 노인성(老人星)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으로
행운을 가져다 주는 별로 알려진 천남성(노인성)과 같이 중풍 등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이 귀한 화초의 소문이 고을 원님에게도 전해졌는데
사실 고을 원님의 모친께서 풍이 와, 거동을 못하셔서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다 처방을 했으나 무효하던 차였지요.
가을이 되어 작은 옥수수 같이 생긴 붉은 열매가 잘 익었을 때
우리의 젊은 선비가 열매를 수확해 잘 건조시켜 고을 원님께 진상했던 것입니다.
의원 김첨지가 소량으로 조심스런 처방으로 여러날을 조금씩 달여 복용케하니
고을 원님 모친께서 병상을 털고 일어나는 기적을 보였던 것이지요.
고을 원님이
우리의 젊은 선비를 불러 소원을 물으니
"과거 공부에 필요한 서책을 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을 원님은
소문대로 반듯하고 출중해 보이는 젊은 선비를 위해
자신의 스승께 청하여 제자로 삼아 3년여 공부에 매진케 해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문경새재 길
우리의 젊은 선비가 과거길에서 또 그 '천남성' 을 보았지요.
'그래! 저 화초의 기운으로 내 과거급제 하리라!'
장원급제한 젊은 선비는
암행어사로 전국을 다니며 선정을 베푸는 관리, 악행을 일삼는 관리를 일일이 상소하여
백성들의 삶을 '평강'하게 하는데 기여해 나라의 칭송을 듣는 훌륭한 목민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5월 문경새재에 가면
귀한 눈을 가진 반듯한 사람이면
'천남성'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