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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Feb 15. 2021

불편함도 사치다.

Feat.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 

20세기 후반에 유명했던 수수께끼에는 자동차 사고로 부상을 당한 남자아이가 나온다. 아이 아버지가 크게 다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아이는 곧장 수술실로 보내졌다. 그때 의사가 아이를 한번 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난 이 아이를 수술할 수 없어요. 얘는 내 아들이에요."

어떻게 된 일일까? (P.143)



나는 살면서 내가 은연중에 성차별을 당했다던지, 혹은 나도 모르게 역으로 성차별을 하고 있다던지에 대해서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 수수께끼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위의 수수께끼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러했다:

아이랑 같이 온 아빠는 새아빠고, 의사가 친아빠겠지.


왜 의사가 엄마라는 생각을 못했던 걸까? 


나의 무의식 속 어딘가, <의사 선생님은 남자>라는 공식이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여성의 연대와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서, 정작 이 수수께끼 하나 제대로 못 푼 나 자신에게 적잖이 실망했고 놀랐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여성과 노동, 그리고 유리천장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하고 배워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역사 공부를 할 때 흘려보냈던 <여성>과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 흘려 읽지 않았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찾아보고, 배우려고 애썼다. 그러던 도중,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을 마주했다.



여성이, 그들의 노동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 눈치껏 -- 예상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책을 덮고 난 후에 처음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따라서, <여성이 마주한 노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이 들면 -- 설상가상 안다고 해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 --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은 친절한 용어해설과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성의 노동은 왜 차별받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또한, 노동분야에서 나타나는 젠더 불평등 현상을 대체적으로 살피고, 여성 노동자에게는 제한되는 승진과 남성 노동자의 72% 밖에 되지 않는 여성의 임금 소득 등 현실에 만연해 있는 문제들을 다루기도 한다. 끝으로 많은 여성들이 직면해야 하는 <가정과 직장 사이의 갈등>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각도에서의 방향을 제시한다. 




가족의 행복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있다.

여성과 남성은 적극적인 부모 역할과 의미 있는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P.297

 

남자들이 가사를, 육아를 "도와야 하는 게" 아니다. 

돕는다는 것은 애초에 <여성>의 일을 <남성>이 함께 해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육아와 가사는 여성만의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이 책은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진실이고, 역사이며, 불평등을 평생 느끼며 산 사람들에겐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도 사치다. 


불편하다고 덮지 말자.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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