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My Taste
[취향]이라는 단어가 좋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한 들, [취향]이라는 명목 하에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누구한테 이해받지 않아도 되고, 내가 "나" 될 수 있으니까.
당장 내가 사랑하는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만 봐도 그렇다.
지금이니까 다꾸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으면서 모든 이들이 인정(?)해주는 취미/취향이 되었지, 예전에 내가 다꾸 좋아한다 그러면, "어른이 무슨 스티커야?" "그거 꾸며서 뭐하게?"라는 코멘트가 대다수였다.
그때마다 나는 되려 반문했다.
어른이 스티커 붙이면 어때서?
어른이 귀염 뽀짝 한 거 좋아하면 어때서?
어른이 책상 앞에 앉아 다이어리 꾸미면서 내 하루를 톺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어디가 어때서?
나의 이러한 반문에도 계속되는 주변 사람들의 다꾸에 대한 냉랭한 시선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였다.
다꾸도 내 취향이야. 존중해줘.
맞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취향이니" 이해하겠다는 그들의 암묵적인 동의 역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건. [취향]이라는 이름 아래에 말이다.
내가 다꾸를 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 당시, 6공 다이어리가 유행이었고, H.O.T. 의 사진을 오려서 다이어리 커버를 꾸미는 게 유행이었다. 그래서 잡지를 사다가 사진을 오리고, 다이어리에 스크랩하듯이 해서 커버를 꾸몄고, 남는 걸로 콜라주를 만드는 형식으로 속지 여기저기 내 취향껏, 내 눈에 예쁜 것들을 오려서 붙이는 게 내 다꾸의 시초였다.
잡지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은 스티커로 해결했다. 잡지가 사진과 텍스트, 날 것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스티커는 색깔도 알록달록, 그림도 귀염 뽀짝 하니, 현실과는 정반대의 오밀조밀함과 팬시함이 가득했던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래서 잡지와 스티커를 섞어가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다이어리를 채우고 나면, 내가 현실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스티커와 잡지를 붙이는 것에 재미 들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이는 그림을 지독히도 못 그리는 나의 똥 손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은 자기들만의 캐릭터도 그리고 예쁜 애니메이션도 그려가며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림을 정말이지 너무 못 그리기 때문이다 -- 이는 빈말이 아니고 자아 성찰이 아주 잘되는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정말 그림을 못 그린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내 손이 아닌 "남의 손"과 남의 작품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티커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스티커를 사거나 엽서나 일러스트를 모을 때 생각 없이 모은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다.
내가 스티커를 고르는 기준은
1) 이 스티커가 어디에 붙일지 정확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2) 내가 좋아하는 것이 대다수인 스티커만 살 것.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충족이 되어야만 스티커나 엽서/일러스트를 내 컬렉션에 들인다.
우선 1번부터.
요즘은 핫트랙스만 가도 브랜드별로 스티커가 쫙 깔려있다. 말 그대로 스티커의 옵션이 점점 더 많아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 스티커를 도대체 언제 어디에 무슨 이유로 붙일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취향껏 집게 되면 스티커만 10만 원, 그 이상어치 사는 건 식은 죽 먹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정확한 기준을 세우기로 했다. 내 일상생활을 대변할 수 있는 스티커인지? 먼슬리에 쓸지, 위클리에 쓸지, 데일리에 쓸지. 내가 쓰는 다이어리의 칸과는 잘 맞는지? 등등 정확하게 내가 무언의 이유로 쓸 수 있는 스티커인지 확인부터 한다.
그다음은 2번.
한 스티커 묶음에 다양한 스티커들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럴 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더 많으면 사고, 그게 아니라면 냉정하게 내려놓는다. 예를 들면,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커피 + 베이커리가 합쳐져 있는 스티커 묶음은 굉장한 고민이 된다. 커피 그림도 많고, 내가 자주 먹는 빵 그림도 많기 때문이다. 빵 그림도 너무 예뻐서 사고 싶긴 한데, 커피 그림이 더 많다? 그럴 땐 스티커를 내려놓는 것이다. 커피 그림이 쓸모없어지기 때문에.
이처럼 나는 나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고, 정확하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첫 다꾸를 시작한 지 25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아주 재밌게 내 취향을 맘껏 뽐내며 즐거운 다꾸 생활을 하고 있다.
33년을 맥시멀 리스트로 살아오면서 내가 나눔에 인색한 것이 딱 하나가 있다면 바로 스티커다.
내가 가진 책, 다이어리, 문구, 필기구, 메모지 등등 어느 것 하나 내 손길이 안 닿은 것 없고, 취향을 안타는 것이 없지만, 이들을 나눌 때, 버릴 때는 아쉬운 마음 반, 홀가분한 마음 반이라면, 스티커는 도무지 포기를 못하겠다. 왜일까?
이 글을 빌어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스티커는 포기가 안 되는 걸까?
생각해보니 내가 구매한 스티커 속엔
나만의 뚜렷한 취향과 기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고민도 많이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형상화되어있기에 텍스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고, 계속 볼 수 있고, 알릴 수 있기에. 그리고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나" 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기에 나는 스티커만큼은 놓을 수가 없나 보다.
어제도 난 스티커를 샀다. 빈티지 한 티켓 모양의 스티커, 행성과 우주를 담은 스티커, 꽃과 버섯 모양을 하고 있는 스티커 등 <1월 신상품>이라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단골 마켓에 가서 구매를 했다. 다달이 사는데도 스티커를 사는 건 왜 이리 황홀한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왜 자꾸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계속 흘끔흘끔 보고 있게 된다.
(생각해보니 나는 스티커를 사면 절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두지 않는다. 꼭 내가 자주 쓰는 박스 안에 넣어놓고 그렇게 들여다보고 그 그림들을 통해서 영감을 얻고 사유하고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내 웃었다.
나의 취향을 내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서. 행복해서.
생각해보면 단순하지 않은가?
스티커를 좋아한다는 것 말이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스티커를 보고 나면 기분이 풀어지는 것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짐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 취향껏 스티커를 모으고, 다이어리를 꾸미겠다고.
나를 '나' 답게 만들어주는, 내 취향이 잘 반영된 스티커 컬렉션을 평생 만들어 나가겠다고.
PS) 당신의 취향은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