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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Dec 26. 2021

'잠깐' 나 혼자 산다

한 달 간의 싱글 라이프


이제 23일이 지났다.

그리고 일주일이 남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살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낸 적이 없다. 가끔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여행을 떠나고 며칠 늦게 조인한 적은 있어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나 혼자 사는 건 처음이다. 첫 며칠은 허전함이 물밀 듯 밀려왔다. 아이들이 벗어 두고 간 빨래를 해서 옷장에 넣을 때까지 아주 많이 허전했다. 평소엔 작게 느껴졌던 집이 휑한 게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면서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그간 휘몰아치던 학교일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제일 먼저 라디오를 켠다. 평소엔 밤에만 들었지만 혼자 있으니 하루 종일 라디오를 틀어놓게 된다. TV와 달리 라디오 방송은 들으면서도 일을 할 수 있고 조용한 집에 생기도 불어넣어 준다. 아침 햇살 가득한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만든다. 아침에 커피를 만드는 시간은 내가 하루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갓 볶은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을 한다. 천천히 물을 붓고 커피 가루가 빵처럼 부풀어 오르면 30초 정도 뜸을 들인다. 물줄기가 일정하게 둥근 원을 그리며 골고루 잘 부어지도록 손놀림에 신경을 써서 두 번에 걸쳐 천천히 내린다. 머그컵에 내린 커피를 붓고 뜨거운 물을 조금 더 섞어 준다. 빵이나 샌드위치, 랩을 준비해서 식탁으로 가져온다. 아침을 먹으면서 천천히 싱가포르와 한국 신문을 읽고 이후에는 한 시간여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더 담아 내 방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한다. 아이들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나의 아침 시간은 이처럼 늘 변함없다.     


오후 1시가 되었다. 평소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딸과 내가 먹을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지금은 급할 게 없다. 오로지 내 배꼽시계만 따르면 된다. 가끔 딸이 간단한 국수를 준비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가 준비하거나 바쁠 땐 배달 음식을 시켜 먹다. 내가 사는 곳은 가게나 식당이 거의 없는 주택가이다. 대부분의 끼니를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혼자 있는 지금, 시간에 쫓겨 하던 일을 멈추고 점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금 늦어져도 괜찮다. 혼자 있으니 빨래도 다림질도 간단하다. 아이들이 있을 땐 더운 여름 날씨에 매일 빨래가 수북 쌓였다. 하루도 거를 수가 없었다. 청소도 그렇다.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닦아만 놓아도 먼지만 조금씩 쌓일 뿐이다. 먼지 청소포로 슬슬 밀면 된다.      


‘아, 진짜 편하고 자유롭고 시간도 여유롭다!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갔으면...’   




, 좋긴 좋은데 너무 허전하다. 아무리 편해도 혼자는 못 살겠다. 애들도 보고 싶다.’     


혼자 한 달을 살면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나오는 그런 연예인들 부럽지 않은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있어보니 별 거 없다. 일상은 반복되고 일은 덜어서 편하지만 크게 재미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도 말을 하지 않으니 잠긴 목소리가 오래간다. 얼마 전 아들이 제대한 후부터는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커피를 마셨는데 아들이 없으니 커피 맛도 덜하다.      


하루 중 가장 싫은 시간은 저녁 시간이다. 혼자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는 건 점심을 먹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왠지 쓸쓸하다. 아이패드에 시선을 고정해 놓고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저녁을 먹는다. 저 멀리 불빛 너머로 이웃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들 혼자는 아닌 것 같다. 저녁이면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그날 있었던 일, 그날 먹었던 음식을 이야기해 주고 엄마는 또 뭘 했는지 살뜰히 물어본다. “엄마, 사랑해. 하트하트. 엄마 하트하트하트, 엄마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 하트하트.”     


일주일 후면 모두들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모두 같이 하는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곧 내 품을 떠날 것이고 한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러했듯 이제 곧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조금 더 힘이 들어도 조금 더 할 게 많아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오면 트렁크 속 빨래와 짐들이 제자리에 놓일 때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테고 청소해 놓은 집도 소용없을 것이다. 간단히 차리던 혼밥 대신 식구들 끼니 준비로 바쁠 것이며 내 하루는 계획과 수정을 반복할 것이다. 분명 이 혼자만의 시간과 여유를 그리워하며 어쩌면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남은 일주일, 그냥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내일은 평소 차를 타고 가던 쇼핑몰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이른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공원을 지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쇼핑몰에 들러 2022년 플래너를 사 오려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도 즐거웠고 같이 하는 시간도 즐거울 것을 기다리며.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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