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하루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여름방학이 세 달이나 있었지만, 아이들이 인턴으로 일하느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내가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자, 아이들이 바람도 쐴 겸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Johor Bahru, JB)에 하루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하루 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은 이곳 생활의 큰 장점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 물가가 싱가포르 물가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아 저렴하게 식사하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위의 싱가포르 친구들은 주말이면 조호르바루에 가서 밥을 먹고, 미용실도 들르며 장을 보곤 한다. 나도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자가용으로 아이들과 몇 번 조호르바루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녀왔을 때 교통체증과 출입국 심사로 오래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있어 그 후로는 다시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8년 전, 싱가포르 우드랜드 체크포인트(Woodland Checkpoint)와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를 연결하는 셔틀 열차가 생겼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종종 이 열차를 타고 조호르바루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는데, 매우 편리하다고 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조호르바루에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먼저 말레이시아 KTMB사이트에 접속해 여권 정보를 입력하고 열차표를 온라인으로 예매해야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조호르바루행 티켓은 5 싱가포르 달러(약 5천 원), 조호르바루에서 싱가포르행 티켓은 5링깃(약 1400원)이었다. 환율 때문에 티켓 가격에 차이가 있었다. 출발 3주 전에 예매했다.
여행 당일 아침, 8시 45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우드랜드 체크포인트로 갔다. 열차 출발 40분 전에 게이트가 열리기 때문에 8시 5분까지 도착해야 했다. 집에서 서둘러 나온 덕분에 8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8시 5분이 되자 게이트가 열렸다. 싱가포르 이민국 자동출입국심사대를 이용해 신속하게 출국했다.
5분쯤 걸어가니 말레이시아 이민국이 보였다. 싱가포르와 달리 자동출입국심사대가 없어 조금 놀랐다. 심사관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이름이 뭐예요? 방문 목적이 뭐예요? 며칠 있을 거예요? 돌아갈 때도 열차 타고 가나요?” 심사관의 질문에 답하자,여권에 말레이시아 입국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별다른 질문 없이 바로 스탬프를 찍어 주었는데, 유독 나에게만 폭탄 질문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아이들은 입국 심사를 마친 후 나를 보자마자 깔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진짜 수상해 보였나 봐요!”
KTMB 셔틀 열차(싱가포르 우드랜드 체크포인트 - 말레이시아 JB센트럴), 출발 20분 전에 게이트가 닫힌다.
드디어 열차에 탑승했다. 출발 후 5분 만에 말레이시아 JB센트럴역에 도착했다. 우드랜드 체크포인트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르 해협을 건너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열차로 이동 중, 아이들은 내게 하루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모두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일정으로 짰다고 했다. 먼저 요즘 힙한 카페 두 곳에 가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 후, 터프팅(Tuffting, 러그 제작) 수업을 듣고 아웃렛에서 쇼핑하고,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일정이 꽤 빡빡했지만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모든 이동은 차량 공유 서비스인 그램(Grab)을 이용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참고로 2023년 8월 기준으로 1 싱가포르 달러는 3.42 말레이시아 링깃이다.)
JB센트럴역에서 그랩을 타고 인스타그램에서 소문난 카페로 이동했다. 약 20분 후 도착했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장형 카페였다. 천장 가까이에는 하얀 커튼이 설치되어 있었고,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에 흔들렸다. 아이들과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엄마, 뭐 드실래요? 여기는 베이글이 참 맛있어요.” 아들이 추천한 대로 베이글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짭짤한 베이글에 딸기 크림치즈가 잘 어울렸다. 썰어놓은 바나나 몇 조각도 맛있게 먹었다. 카페에는 이른 아침부터 클럽 뮤직이 흘렀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분위기를 즐겼지만, 아이들은빠른 비트의 음악이 아침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을 먹은 후, 그랩을 타고 또 다른 카페로 이동했다. 이곳도 공장형 카페였다.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더 즐기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엄마, 어느 카페 커피가 더 맛있었어요? 엄마는 신맛을 좋아하니까 첫 번째 카페에서 마신 커피지요?” 커피를 좋아하는 아들과 나는 커피 맛을 이야기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왼쪽: 카페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때때로 공연도 열린다고 한다. 오른쪽: 아침 식사, 양도 많고 맛있었다. 메인 요리 3개와 음료 3잔을 주문했고 음식값은 약 3만 5천원이 나왔다
터프팅 수업을 받으러 공방으로 갔다. 터프팅은 총처럼 생긴 터프팅건에 실을 꿰어 천에 실을 쏘는 직조 기법이다. 러그나 거울 같은 소품을 만들 수 있다. 요즘 핫한 취미라고 아이들에게 들었지만, 나에게는 낯설었다. 원데이 3시간 클래스는 인기가 많아서 딸이 미리 예약해 두었다. 공방으로 들어서자, 다채로운 실과 작업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작업테이블 위에는 우리가 사용할 캔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내가 고른 디자인은 미리 선생님께 공유해 두었고, 선생님은 내가 고른 디자인이 디테일이 많아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셨다.
먼저 터프팅건 사용방법을 배웠다. 터프팅건 무게는 3kg 정도로 꽤 무거웠다. 실을 꿰는 방법과 터프팅건 사용법을 배운 후, 각자 캔버스에 도안을 그리고 실을 골랐다. 원단에 터프팅건으로 한 색상씩 실을 쏘아 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내 도안은 복잡해서 기대했던 것만큼 예쁘게 나오진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색색 실로 장식된 벽을 배경으로 완성된 작품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은 우리 셋이 웃으며 서로 쳐다보는 순간을 포착해 주셨다. 사진이 아주 예쁘게 나왔다.
터프팅건을 이용해 원단에 실을 쏘고 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탕탕탕탕" 소리가 난다.
왼쪽: 내가 작업한 러그, 가운데 있는 흰꽃이 하얀 배경에 묻혀버렸다. 오른쪽: 작업실 풍경이다. 수강료가 싱가포르의 1/3가격이었다. (한 명당 약 3만원이었다.)
점심은 근처 일본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한 후, 그랩을 타고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했지만 레이아웃이나 입점 브랜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먼저 옷과 가방을 구경했다. 명품이라기엔 이미 시즌이 지난 제품들이 많았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다. 코치백은 매장 내 모든 제품이 50% 할인된 가격이었지만, 여전히 약 5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했다. 다른 브랜드 제품들도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나왔다. 스포츠매장으로 갔다. 나이키 매장에는 손님들로 붐볐다. 아이들 운동화 두 켤레와 배낭 하나를 약 12만 원에 구매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프리미엄 아웃렛 입구와 매장 사진이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계획한 코스는 더 몰미드밸리 사우스키(The Mall, Mid Valley Southkey)였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몰이었다. 오후 7시가 다 되어 배가 고팠다. 식당 리스트를 대충 훑어보다가 한식당으로 갔다. 전통 한식집은 아니었고, 현지화된 한식당이었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해물탕으로 구성된 기본 세트에 항정살을 추가했다. 카레에 재운 삼겹살과 매운 소스에 재운 삼겹살을 먹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떡볶이와 치즈도 구워 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 화방에 들러 미술용품을 사고 한국 편의점 GS에 들렀다. 얼음컵에아메리카노 파우치를 부어 마셨더니 느끼했던 속이 개운해졌다. 아쉽게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다음에는 쇼핑몰과 연결된 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JB센트럴역에서 밤 9시 반 열차를 타고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한식 기본 상차림인데 가격은 약 5만 원이었다. 고기와 음료수를 추가해서 약 9만 원을 지불했다. 말레이시아 물가를 감안하면 싸지 않은 것 같다.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몸이 노곤했다. 아이들과 보낸 하루가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음식이 입에 맞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나를 배려하고 챙겨 준 아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받았다.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새삼 느꼈다. 행복감이 밀려왔다.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 준 아이들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한, 특별하고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