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 삼길포, 창리포
포구를 유난히 좋아한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더 자주 포구를 찾곤 한다. 천수만과 가로림만, 그리고 서해을 끼고 있는 서산이라는 땅에는 군데군데 포구들이 있다.
삼길포와 창리포, 두 포구는 가을의 끝자락을 닮아 있었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한 오후,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계절의 기류가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하늘은 높고, 햇살은 묘하게 기울어 있었다. 그 빛이 바다 위를 스치면, 물결의 결마다 빛이 일렁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된 필름처럼 깊은 색이었다.
방파제엔 낚시꾼들이 늘어섰다. 그들의 얼굴엔 초조함보다 고요가 깃들어 있었다. 낚싯줄이 물 위에 가늘게 드리워지고, 찌가 가라앉을 듯 말 듯 흔들릴 때, 그들은 시간의 움직임을 읽는 듯했다. 가을의 바다는 그들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계절의 호흡이었다. 물때가 바뀌면 자리를 옮기고, 바람이 바뀌면 손끝의 감각이 바뀌었다. 기다림이 길수록 그들의 표정은 오히려 느긋해졌다. 마치 이 계절이 완전히 저물기 전, 잠시 머물러 있으려는 듯이.
갯벌에 둘러쌓인 이 포구는 시간대마다 매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에는 여기가 항구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삼길포는 가을의 속도를 닮은 항구였다. 해가 한낮의 정점을 지나 기울기 시작할 때쯤, 부두는 느릿하게 숨을 쉬었다. 낚시꾼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물결은 그 발밑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파도가 치지도, 멎지도 않는 리듬 속에서 낚싯줄이 바다 위로 가느다랗게 늘어졌다. 이곳의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바람과 물때로 움직였다.
바다 위로 햇살이 길게 비치면, 그 빛은 금속처럼 차갑고도 따뜻했다. 잔물결이 반짝이며 부서지고, 그 위를 갈매기들이 스쳤다. 갈매기들의 울음은 무질서했지만, 그 속엔 묘한 질서가 있었다. 낚시배가 부두로 돌아올 때면 그들은 날아올라 물 위를 하얗게 덮었다. 그 순간만큼은 항구가 살아 있었다. 인간과 새, 물결과 빛이 한 덩어리로 뒤섞이는 풍경 — 그게 삼길포의 가을이었다.
부두 끝의 좌대 위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긴 기다림에도 표정엔 조급함이 없었다. 그들에게 낚시는 잡는 행위가 아니라, 머무는 방식이었다. 물결이 스치면 그 소리를 듣고, 바람이 바뀌면 손끝의 긴장을 조절했다. 그 느린 집중 속에서 바다는 조금씩 계절의 얼굴을 바꿔갔다. 하늘이 붉게 물들며, 수면이 그 빛을 따라 어두워질 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을의 삼길포는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잔잔하고, 오래 남았다.
늦은 오후 낚시꾼들이 떠나는 자리엔 순서를 기다리던 갈매기들로 가득하다.
해가 완전히 기울면, 방파제 위로 불빛이 켜지고, 낚싯대 끝의 작은 전등들이 바다 위를 점처럼 밝혀냈다. 그 불빛들은 마치 각자의 인내가 떠 있는 듯했다. 포구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안엔 묘한 온기가 있었다. 기다림의 온도, 그리고 계절이 천천히 식어가는 온도였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가을이란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끝까지 타오르는 계절이 아니라, 모든 빛이 천천히 저물며 남긴 여운. 삼길포의 가을은 그렇게 잦아들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서산 #삼길포 #창리포 #충남방문의해 #서산한달살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