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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Sep 21. 2022

중간점검

무기력

정말 잘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가족이다보니 다른 대상자들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더라고요. 솔직히 사전에 계획했던 것들을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티비보기, 산책하기, 드라이브하기, 그림그리기, 놀이하기 등등 어머니들을 위해 준비했지만 시작 단계에서 포기해야만 했지요.

티비보기는 거동을 못하는 친정엄마의 방에서 해야하는데 첫날에 시어머니는 오분도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자리를 뜨더니 불편해서 싫으시다네요. 그리곤 각자 방에서 꼭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합니다.

친정엄마는 산책이 불가능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 산책을 거부합니다. 이유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짜증도 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 속에 자리한 불안감을 제가 어찌 가늠할까요.

드라이브를 권하는 제게 두 어머니는 볼 일도 없이 기름값 날리다며 살림 헤픈 아낙 취급을합니다. 답답하지 않냐는 저의 걱정에 한심한 듯 쳐다보시네요.

그림 그리기는 친정어머니는 애초에 손사래를 치고 시어머니는 꽃 두 송이 따라 그리더니 붓을 놓고 정색을 합디다. "이런 거 시키지 마라." 파킨슨 증상이  있어 손을 떠시는데 아무래도 힘드셨나봐요.

시어머니는 딱 한 가지 놀이만 원하셨지요.화투놀이. 몇 달 하셨는데 며느리와의 화투놀이가 친구들과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셨겠지요? 재미가 예전만 못 하고 허리도 아프다며 그만두시더라고요.

잘 해드리자고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헛수고가 되었지요.

아, 두 분이 진짜 좋아하는 게 있긴 해요. 옛 이야기, 남 이야기 하는 거.  근데 끝이 없이 이어지는  남의 흉이나 살아온 이야기는  듣고 있기가 너무 힘들어요. 삼십 분 넘으면 일 핑계라도 대고 일어나야 해요. 추임새까지 해야 하는데 거의 실신지경이 되거든요.

식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당신이 드시는 메뉴 외에는 절대 드시지않겠다고 고집을 피워요. 이가 없고 틀니도 불편하다며 내버렸는데 그런 상황이면서도 두부, 계란, 죽 등 부드러운 음식은 절대사절입니다. 애가 타지만 별 수 없어요. 애원해도 안 드시니 버려야 할 밖에요. 시어머니는 뭐든 잘 드십니다.  그런데 한 번에 반찬을 한 가지만 드십니다. 국을 드시면  그나마 반찬은 패스~

골고루 드셔야 한다는 설득이 먹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어머니에겐 저는 아직도 가르쳐야 할 며느리입니다. 다정한 대화보다는 지적하는  잔소리를 하지요. 근데 그 지적이란 게 질색할 것들입니다. 다 큰 딸아이는 왜 시집을 보내지 않느냐, 며느리는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지 저렇게 둘 거냐, 남편 아까운 줄 알아야지 밤낚시는 왜 안 말리느냐, 가스 아껴야지, 보일러 돌리지 마라. 국만 있으면 되는데 다른 반찬은 왜 하냐...

이러니 다정한 대화는 물 건너 갔지요.

사실 많이 지쳤습니다. 어머니들이 원하는 것과 제가 해드리고 싶은 것의 차이가 너무도 큽니다. 제일 잘 모시는 것은 원하는 대로 해드리는 거라는데 원하시는 대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추운 방, 텅빈 밥상, 가족들과의 갈등. 정말 이걸 해야 할까요?

결국은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반기들면서 살게 되네요.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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