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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Sep 30. 2022

나의 일기

가을

가을=식욕?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등식을 참으로 알고 산 적이 있다. 경험으로 안 것이 아니라 책에서 워낙 많이 보고 들은 말이라 자동 저장된 것이다. 하늘이 높은 건 인정~, 근데 살이 찐다는 건 글쎄? 의문 부호를 붙인다.

엄마는 가을 문턱에서 입맛을 잃었다. 정해진 음식도 섭취량이 줄어,  살기 위해 목구멍에 풀 칠 하는 정도다. 이리저리 설득해도 고개를 젓는다. 삼킬 수 없다는 데야 뾰족한 수가 없다. 그나마 식혜는 하루 세 컵의 양을 유지한다. 한 달에 세 번을 달이는 수고가 처음엔 귀찮고 번거로웠지만 그게 엄마의 유일한 먹거리라 애타는 마음, 기꺼운 마음으로 준비한다.

날씨가 선선해지자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

침대 위의 전기 장판이 긴장감의 원인이다. 낮은 온도로 켜놓으면 어머니는 금세 꺼버린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웅크린 모습이 너무 보기 싫은데 어머니는 이불 덮으면 될 일을 뭐하러 낭비하냐며 타박하신다. 전기료 얼마 안 나온다는 말도 소용없다.

계절은 고갯마루와도 같다. 한 고개를 넘고 또 새로운 고개를 넘으며 세월은 흐른다. 환갑을 바라보는 내게도 그 고개는 예사롭지 않다. 가끔 막막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다시 되돌아 걸을 수 없는 것이기에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깊은 회한이 남는다.

하물며, 아흔이 넘은 어머니들께 계절의 고갯마루는 생의 종점처럼 버겁게 느껴지지 않을까싶다. 넘을 수 있을까? 다른 계절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두려움에  식욕이 달아난 건 아닐까? 하릴없는 몸뚱이에 따스한 온기마저 쓸데없는 호사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엄마가 좋아하는 달달한 반찬을 만들고 시어머니 몰래 전기요에 전원을 켠다. 부디 이 가을이 힘겹지 않기를. 붉게 단풍이 든 숲을 그리며 이파리 하나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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