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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Oct 01. 2022

나의 일기

집착

'아직은 내가...'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시어머니는 매사에 '아직은  내가 한다'며 고집을 부린다. 목욕을 도와드리려 해도, 침구 정리,  속옷 빨래 등 민감만 부분은 물론이고, 심지어 농사를 짓겠다며 시골로 데려가 달라가 성화다. 일상 생활도 힘들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마저 잊으신 건지.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차를 내가지 어머니는 옷가지를 붙잡고 끙끙대고 계셨다. "뭐 하세요?" 묻자, 코끝에 걸린 안경을 올리며 바지 허리에 고무를 넣는단다. "제가 해드릴 게요. 주세요."했더니  "내가 한다. 니가 이런  거 제대로 할 줄 아나?"  여전한 고집이다. "네, 그럼 하시다 힘들면 부르세요." 두 말 않고 자리를 떴다. 사정하다시피 뺐는 일은 그만 두기로 했다. 어머니의 고집은 세포마다 각인 된 것이다. 게다가 혼자서도 가능한 것은 하게 하는 것이 좋다지 않는가.

커피 마신 뒤 문틈으로 슬쩍 훔쳐보니 고무줄은 아직도 삼분의 일 지점에 있다. 들어 갈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쩌면 하루 종일 고무줄을 잡고 씨름 힐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기 전에는 아는 척 않기로 했다.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 힘이 들어 밀쳐놓을 때 슬그머니 해결하면 될 일이다. 그게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이다. 공식적으로 어머니는 며느리의 도움 밭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점심 때가 되기 전에 고무줄을 다끼웠다. 다행이다. 고무줄끼우기에 실패해 자책하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된다. 사소한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양식을 축내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며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을 못 견뎌하신다. 아흔이면 그래도 된다는 내 위로에 그럴 거면 죽어야 한다고 맞서는 분이다. 자식에게 주는 건 당연하고 받는 건 자존심 상하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무의미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무엇을 하건 자신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어느 곳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경제적인 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시어머니도 그 중 하나다. 그런 생각은 돌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아흔이  넘도록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충분히 자신은 존재 가치를 발휘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해도 존중받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들은 나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안타깝게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 모습이 그리 되지 않도록 마음 공부를 해야겠다. 그저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모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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