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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3. 2022

이른 아침의 소동

허기



  거실 바닥에 쌀알이 흩어졌다. 의아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싱크대엔 밥숟가락이 하나 들어앉았다. 분명 어제 저녁에 설거지를 끝내고 갔는데, 숟가락 하나를 빠뜨렸을 리가 없는데 하며 한 번 더 고개를 갸웃한다.


  문안을 드리려 문을 열었는데 시어머니 방에 전기밥솥이 있다. 어제 식혜를 하고 씻어 주방 한쪽에 둔 건데 왜? 평소와 다르게 시어머니는 아직 취침 중이었다. 다른 아침 풍경에 슬며시 드는 걱정으로 어머니를 깨웠다. 다행히 눈을 뜬다. 눈빛이 멍하다. 초점 없는 눈은 천정을 향했다. 손을 잡고 살짝 흔들며 잠을 깨운다. 가끔 멍하게 아침을 맞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시어머니는 배가 고파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 밥을 했단다. 그러느라 여기저기 쌀알을 흘린 것이다. 밥솥 뚜껑을 열자 절반은 눌은밥이 남아있었다. 식혜를 만들 때 쓰는 솥은 평소 사용하는 솥보다 두 배는 크고, 예전 시골에 계실 때 당신이 사용하던 솥이다. 어제 저녁 식사 후 남은 밥이 보온되어 있는데 밥을 했냐고 물었더니 ‘빨간밥’은 싫단다. 흑미를 넣은 밥을 말한다. 집으로 모시고 일 년 반을 그렇게 드셨어도 지금껏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경증 치매를 앓고 있다. 가끔 뜬금없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도 있다. 집(시골)으로 가겠다며 가출을 시도 한 적도 있고, 며느리가 데리고 나가 버릴까봐 산책을 거부하기도 한다. 친정 엄마를 시샘하기도 하고, 또 당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비관할 때도 있었다. 무위도식이라며 한숨을 쉬고 식사가 과하다는 말을 늘 해왔지만 한 번도 부족하다고 한 적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반찬이 없어 맨밥을 먹었다는 볼 멘 소리다. 냉장고를 열어 가득한 반찬들을 보여주자 시선을 돌린다. 


  이른 새벽,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느라 불편한 걸음으로 부산했을 모습과 밥통을 끌어안고 찬 없는 밥을 퍼먹었을 시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두려움도 스멀스멀 밀려든다. 견디지 못할 배고픔인데 밥솥에 남은 밥이 싫어 어둠속에서 새 밥을 지었을까? 냉장고의 반찬은 정말 떠올리지 못했을까? 아니, 이른 새벽에 든 허기는 진짜였을까? 치매가 깊어진 것은 아닐까? 온갖 의문에 머리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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