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입맛을 잃은 엄마를 위하여

  전날부터 팥을 불리고, 찹쌀을 불렸다. 새알심을 준비하고 아침 일찍부터 팥을 삶았다. 팥물을 내려 앙금을 거르고 불려놓은 찹쌀을 넣고 죽을 쑨다. 큰 솥에서 얼마간의 팥물을 덜어 내  엄마가 드실 단팥죽을 따로 만든다. 아주 달달한.

  단팥죽이 먹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팥죽 끓이기에 도전했다. 기왕 하는 김에 옆집 할머니도 한 통 드리고, 지인들 몇이 모여 점심으로 먹을 것까지 큰 솥 한가득 죽을 끓였다. 죽이 폴짝폴짝 끓어올라 터지는 죽방울로 주걱을 젓는 손 군데군데 작은 화상을 입는다. 피부가 벗겨질 정도는 아니지만 은근슬쩍 거슬릴 정도다. 시어머니는 영 미덥지 못한 눈길로 감시를 한다. 소금을 얼마나 넣는지, 언제 넣는지, 찹쌀과 새알심의 양이 적당한지...대답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라디오를 켰다. 못들은 척 하기는 그저 그만이다.

  라면 하나 끓이기에 딱 맞는 냄비에 끓인 단팥죽이 먼저 완성되고, 한참 뒤에야 큰솥도 마무리를 했다. 곳곳에 데인 자국에 찬물을 끼얹으며 설거지를 한다. 금세 한 그릇 뚝딱 비운 시어머니를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새알심 두 개로 배부르다며 숟가락을 놓는 엄마를 보면 허탈하기도 하다. 끓는 팥죽에서 공기 방울이 터지듯 한숨이 새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