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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an 14. 2023

최여사 일기

미운 아흔살

  시어머니의 표정이 우울하다. 친정어머니에게 손님이 다녀가면 시어머니는 언제나 우울해진다. 가끔 심술을 낼 때도 있다. 친정 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어머니를 찾는다. 그것은 규칙으로 정해진 의무 같은 것이지만 시어머니는 부럽기 그지없다. 

  시골에서 이사를 나온 지 일 년이 넘었지만 둘째 아들만 두어 번 다녀갔을 뿐 시어머니를 방문한 사람은 없다. 그 점은 나로서도 서운하게 느껴지므로 사돈과 비교하며 부러워하는 시어머니를 탓할 생각은 없다. 바쁘고 힘들겠지만 가끔 들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똑 같을 것이다.

  “내 자식들은 하나 같이 나를 미워해. 그러니 어미 보러 오는 놈이 없지. 사돈은 좋겠다.”

푸념처럼 쏟아내는 하소연은 들을 때마다 민망하다. 도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적당한 대꾸가 떠오르지 않는다. 달래야 하나? 아니면 솔직히 말해야 할까?

  기어이 눈물을 글썽인다. 모른 척 하려던 마음이 급선회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혈압이 오르고 쓰러질 게 뻔했다. 다들 바쁜 게 아니겠냐고. 보고 싶다는 전화 한 통 넣자고 구스른다. 갑자기 눈빛이 단호해진다. 절대 먼저 전화하는 일은 없을 거란다.

  시어머니의 성품은 내 보기에 ‘외강내유’다. 무서우리만치 단단해 보이는 짱짱한 성격이다. 하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실체보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 체면과 예의가 목숨보다 중한 가난한 유학자 집안의 딸이다. 자식 사랑은 속으로만 품었다. 칭찬 한 마디가 인색하다. 당신이 부여받은 지상명제처럼 늘, 누군가를 막론하고 훈계한다. 

  점잖고 예의바른 할머니인 시어머니의 정체는 자식들에게 막말을 하는 어머니다. 취미 생활을 하던 아들에게는 ‘그렇게 하고 잘도 살겠다.’라든가, 간식을 챙겨 들린 며느리에게 ‘남의 집 며느리들 살림 사는 거 보고 배워라. 어찌 그리 헤픈지. 밥 세끼 다 먹고 군것질은 무슨.’ 시어머니에게서 예쁜 말은 손주를 보고나서야 한두 마디 들었다. 

  감정에 인색한 어머니에게 정을 쏟는 자식은 타고난 효자다. 불행히도 어머니에게는 하늘이 내린 효자는 없는 모양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한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늘이 만들어 낸 관계여서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 세상이 변하면서 천륜도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부모와 자식 간에 소송이 이어지고, 끔찍한 일들도 일어난다. 관계를 끊고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어머니, 정말 자식들이 어머니를 미워한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그냥 미워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조심스레 질문을 한다. 이유는 없단다. 자식들이 늙은 어미가 싫어져서 그런 거라고 한다. “제 생각으로는 그게 사실이라면 어머니가 말을 밉게 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요?” 결국 뱉고 말았다. 어머니는 펄쩍 뛴다. 자식들에게 아부라도 하라는 거냐고. 예쁜 말, 좋은 말을 듣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어머니도 싫은 소리보다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지 거 아니냐고 했지만 턱도 없다. 

  피곤하다며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 돌아눕는다. 물질적으로는 당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내어주는 어머니. 가진 게 없어 더 주지 못해 미안한 어머니는 감정적으로는 인색하다. 한 마디의 칭찬보다 자만을 경계하는 어머니. 속내를 꺼내기보다 짐작해서 알아주길 바라는 어머니는 오늘도 외로운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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