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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워커 Jan 19. 2022

왜 이직 안 하세요?

스타트업 6년차, 한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

왜 이직을 안 하는가?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사회생활 두 번째 회사. 어쩌다 보니 이제 곧 입사 한지 만 6년이다. 부침 많고 이직이 흔하디 흔한 스타트업 씬에서 한 회사 근무 6년 차가 되니 고인 물, 암모나이트, 화석 등등... 온갖 모든 오래된 것이란 오래된 것들에 비유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입사한 동료들이랑 친해져서 얘기할 때 종종 물어보는 질문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근무할 수 있었는지? 이직 생각은 없는지?'이다.


“사람인데, 직장인인데 이직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럴 때마다 주로 답변하는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봤다.


1. 딱히, 가고 싶은 회사가 없었다.

조금 더 큰 규모의 회사를 가고 싶긴 했다. 네임드 회사를 가면 좀 더 좋은 게이지 않을까? 그래서 면접을 보긴 했는데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 했던 일. 그냥 그 네임드를 얻기 위해서 희생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연관성이 떨어지는 산업이어서인지, 현재 내 업무와의 연관도가 떨어져서 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부족해서 인지를 모르겠지만 일단 끝까지 간 프로세스가 없었다. 나중에 여러 회사를 다녀 본 PM분께 들은 얘기지만 오히려 큰 데 가면 업무 스코프가 작아질 수 있다고 해주셨다. 그리고 가만히 있었더니, 대기업에 인수합병되었다.


다른 직군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케터는 자기가 일하는 산업, 서비스에 애착 없이는 일을 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서비스를 못 찾기도 했고 설령 서비스가 좋더라도 확장성이 없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커머스가 좋긴 하다.


2.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점점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딱히 나를 싫어하는 사람, 누구 때문에 힘들다 이런 게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 덕분에 좋았던 적은 많았는데 말이다. 다만 조직이 커지면서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프리라이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건 조직의 크기도 크기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 생긴 사이드 이펙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직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들어온다. 그 사람들이 내 업무 환경을 바꿔주고 ‘아 저 사람이랑 좀 더 같이 일해보고 더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을 들게 해 준다.


3.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졌다.

생각해보면 이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긴 하다.(1, 2번은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입사 초기 2-3년까지만 해도 주로 신규 유저들을 데려오는 User Acquisition 캠페인을 진행했다. 서비스 초기였기 때문에 UA 캠페인이 가장 중요했다. 어떻게 서든 CPI(Cost Per Installs)를 낮추는 게 인생 최대? 목표였다. 자다가도 꿈에서 CPI가 높아지는 악몽을 꿨다. 소재를 만들고, 광고 대시보드를 모니터링하고 캠페인을 온오프 해주고 예산 조절하고...


이 캠페인 관리라는 건 끝이 없다. 낮보다는 저녁, 주중보다는 주말이 중요하고, 유저들의 앱 사용량이 올라가고 잠재 유저들이 모바일에서 많은 시간을 쓰는 연휴 때 광고비를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퇴근이 없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광고 대시보드(특히 페이스북...)는 모바일 버전이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세부적인 데이터 확인과 컨트롤이 어렵다. 그것 때문에 PC로 쓸 수 있는 탭 기기를 따로 사비로 구매하기도 했다. 주말이나 휴가 중에 여행 가서도 원활하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무튼 이 얘기는 너무 기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이 캠페인 운영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끝이 없기 때문에 점점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소재를 매번 만드는 데 개인적인 한계를 느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하면 더 잘할 것 같기도 해서... 모든 일은 한 2-3년 하면 슬럼프가 오는 것 같다.


내가 지쳐 보였을까? 퍼포먼스 마케팅을 2-3년 했을 때쯤 팀 내에서 직접 유튜브 영상도 찍으러 다니고 채널도 운영했다. 물론 이게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업무의 지루함에 환기는 되었다. 다만 그 수치가 성과로 안 나오는 게 나중에는 힘들었다. 채널 운영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상황이 닥치기 또 그것도 하기 싫어지더라. 


이때 깨달았다. 브랜드 마케팅 뭐 이런 건 나랑 안 맞는구나. 그러다가 팀이 커지면서 팀 리더도 해보고, 역대급 괴로움 of 괴로움을 겪었다. 그냥 다시 내가 잘할 수 있고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 생겼다. 


통합 결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결제 서비스, 프로덕트의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실 업무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 당시에 해당 마케팅 경험을 해본 사람이 없었고, 내가 가장 오래됐고, 다른 마케터들 보다 내가 제일 잘할 있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면서 앱 유입 데이터에 가장 익숙했다.

일단 유관부서들과 협업이 많았는데 고인물의 장점은 유관부서와 통합적으로 일하는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거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어느 개발자랑 이야기해야 하는지, 영업 부서에 누구한테 가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런 걸 다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통합 결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쿠폰도 포인트도 말도 안 되게 많이 뿌려봤다. (역시 초반엔 물량전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프로덕트 개발이랑 협업하며 여러 가지 기능도 테스트해보며 전사적인 프로모션도 진행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 되게 쉽게 질리는 스타일인데 그래도 한 회사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어서 지난 6년을 버틸 수 있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게 나를 믿어준 팀 리더, 경영진이 있었고, 그만큼 내가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경영진들이 회사에 바라는 점이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몇 년 동안 일관성 있게 답했다.

“서비스의 확장이요. 그래야 마케터가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와 시도들이 늘어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또 반대로 이직을 꼭 해야 할 시점에 대해 생각해봤다.


진짜로 이직을 해야 하는 시기는 회사의 서비스와 방향성의 확장이 없을 때, 그리고 그 확장성이 나의 업무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내가 업무적으로 새로운 걸 시도해볼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때. 그때는 진짜 적극적으로 이직을 시도해야 한다. 서비스의 방향과 업무 환경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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