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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한 사랑방 Sep 26. 2023

내가 500원 동전을 삼켰던 이유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비밀이야기

 살면서 한 두 명에게 말했던가. 그마저도 서른이 넘어서 말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만의 비밀로 간직했던 숨기고 싶은 안쓰러운 기억을 하나 꺼내보려고 한다. 어렴풋하지만 그때 나는 7살 내지 8살쯤 되었던 것 같다. 아빠는 일을 다니셨고, 엄마가 운영하시는 한식당이 있었고 그 가게 뒤편에는 우리 집이 있었다. 가게와 집을 사이에 두고 작은 마당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빠가 만들어주신 그네도 있었고 파라솔과 대청마루도 있었다. 바쁜 부모님을 뒤로하고 언니 둘과 나는 줄곧 그곳에서 하루 보내곤 했다.

 

당시 엄마의 가게에는 '회식방'으로 불리는 큰 단체 테이블이 있는 룸이 있었다. 그곳은 영업이 끝나면 아빠의 동네 친구들이 놀러 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하는 일명 아지트였다. 술과 담배 냄새가 자욱했고, 왁자지껄 떠드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수다는 가게 담을 넘어 집까지 들르곤 했다. 나에게는 5살 위의 큰언니 한 명, 3살 위의 작은 언니가 있었다. 둘은 죽이 잘 맞아 항상 다투면서도 어울려 놀았고, 나는 어리다며 놀이에 잘 껴주지 않았더랬다. 그날도 언니 둘은 늦어지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팩 게임을 했던 것 같다. 둘이 항상 2인용으로 게임했기에 나는 주로 옆에서 구경하는 걸 자처했는데 그날은 그마저도 지루했나 보다.



아저씨들과 술을 거하게 걸치고 계신 아빠에게 다가갔었다. 아빠는 날 조금 쳐다보시다 방에 가서 언니들과 놀라고 하셨다. 엄마는 술안주를 만드시는지 가게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셨다. 정확히 그때 500원 동전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득한 내 기억 속에 나는 500원짜리 동전을 손에 쥐고 있었다. 여기저기 배회하다 문득 그 500원 동전을 삼키고 싶어 졌었다. 왜 그랬을까. 그걸 왜 삼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까. 지금도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기억을 되짚어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 마저도 들킬까 봐 몰래 가게 화장실에 들어가 꿀꺽 삼켰다. 작디작은 내 목구멍에 500원 동전은 매우 컸고,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목이 답답할 만큼 이질감이 느껴져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었다.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틀어 마셔도 보았다. 물을 과장되게 꿀꺽하고 삼키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목과 가슴 언저리가 답답하고 뻐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어두운 가게 화장실에서 쌩쑈를 벌이다 아빠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솔직히 털어놓았다.


"아빠 나 동전을 삼켰는데 목이 아파요"

아빠는 내가 한 황당한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다. 쪼그리고 앉아 내 입안과 목을 한참을  만져보시며 괜찮은지 살피셨다. 그때 아빠가 나를 바라봐주시는 다정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이 좋았다. 관심받고 있구나를 느끼며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곤 주방으로 가셔서 나에게 맨밥을 몇 숟가락 먹으라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고는 다시 술자리가 펼쳐진 방으로 돌아가셨다.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호랑이처럼 엄한 엄마한테만은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 사실을 알면 분명 엄마는 매섭게 회초리를 들어 혼내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대변으로 동전이 나왔는지 확인하곤 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화장실을 가곤 했다. 그렇게 잊은 듯 지내다가도 불현듯 내 몸 어딘가에 500원 동전이 있으려나, 어디에 있을까, 나오긴 했을까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누워서 내 배 언저리를 만지작 거리며 괜찮을 거라 최면을 걸며 잠들곤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엑스레이 검사가 있을 때면 혹시나 내 뱃속에 500원 동전이 찍히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누가 알기라도 하면 엄마에게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는 날에는 절대 무사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극한의 초조함을 느끼며 다리까지 떨렸었다. 며칠이 지나도 교무실에서도 나를 부르지 않고, 엄마도 별말이 없으신 걸 확인하고서야 내 몸에 500원 동전이 드디어 밖으로 나왔나 보다 생각하며 안도했었다.



내가 왜 이 기억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오랫동안 문득문득 떠올랐다. 초등학교나 들어간 녀석이 어리석게 500원 동전을 삼켰다는 걸 친구들에게 들키기 창피해 서였을까. 아니면 그때 엄마에게 아작이 날 만큼 혼날까 봐 무서워했던 마음이 커서도 이어진 걸까. 참 많이 곱씹어봤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왜 500원 동전을 삼켰을까, 그랬던 이유는 도대체 왜일까. 지레짐작은 했었지만 시원하게 그 이유를 찾은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나는 그 당시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고... 내가 진짜 혼나는 게 무서웠다면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테고, 무서운 엄마가 아닌 자상한 아빠에게 내 어필이 통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걱정스럽고 다정하게 살펴주는 아빠를 보며 '아 이렇게 하면 나를 봐주는구나' 생각했던 건 아닐까. 혼자서 놀다 지치고, 가족 내에서 나의 존재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어린아이가 택한 방법이 그렇게 하찮고 어리석었던 거다. 그렇게 느끼고 나니 그 어린 시절에 내가 한없이 가엽기도 했고, 나의 어린 시절의 허기를 마주하게 되니 시원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가족 내에서 '존재감'이 없다고 자주 느꼈다. 부모님은 바빴고, 언니 둘은 둘이서만 어울렸다. 나는 완벽한 홀수였다. 그렇게 나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컸고, 잡초처럼 무성하게 누비며 놀았다. 아버지는 지금도 종종 언니들에게 셋째를 낳으라고 말씀하신다. '둘째까지는 버거워도 셋째는 그냥 큰다고' 물론 집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입장에서의 ‘셋째’는 많은 경우에서 방치되어 자랐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바쁘셨고, 언니들의 그들만의 리그를 꾸리며 놀았다. 가족들 사이에서 '저 여기 있어요' 말하는 법을 미처 익히지 못했던 나였다. 언니들 노는 걸 뒤에서 구경했고, 엄마가 바쁘면 뒤에서 한참 쳐다보다 방에 들어가 잠들었다. 셋째라는 이유로, 손이 안 간다는 이유로 혼자 놀았고 따뜻한 손길이나 눈길을 많이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셋째는 그냥 큰다'라는 말에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화가 올라 그건 아니라며 반기를 들어 받아치기도 했다. 속으로 '아빠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구시렁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일례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기관지 쪽 질환을 꽤 오랫동안 앓았던 때가 있다. 내가 질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빨래를 개시다 울음을 터트렸던 적이 있다. 개키던 빨래로 눈물을 연신 훔치셨다. 늘 나에게 엄하고 표현이 인색하셨던 엄마라 나를 그렇게 걱정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나 때문에 우는 엄마를 처음 봐서였을까. 엄마가 나 때문에 우는 걸 보고 '아 날 사랑하시구나'를 처음으로 깊이 느꼈던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의 존재감을 측은지심으로 어필하고, 날 향한 그들의 걱정을 받으며 사랑을 확인받고, 만족을 느꼈던걸 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건, 소중히 아낀다는 건 단순히 측은지심처럼 같이 아프고 걱정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얼 하지 않아도 있는 그 자체로 사랑이라는 걸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시절에는 그걸 몰라서 측은지심을 자주 유발하고, 그렇게 관심을 끌고 싶어했다. 그 어두운 감정의 고리는 커서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파생됐다. 왜 그렇게 타인에게 내 존재감을 알리려 애썼는지 그 결핍의 근원을 서른이 넘어서여 마주했다. 내면아이를 만나는 명상을 하던 날이었고, 그날 그 시절 화장실에서 동전을 삼키던 혼자 놀던 나를 마주하고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주 속 시원하게 울어서였을까. 아주 달디 단 숙면을 취한 날이었다.


쓰다 보니 또 내가 가엽고 애틋하지만, 그만큼 홀가분해진 결핍을 느낀다. 이렇게 글로 풀어낼 만큼 나도 담담한 용기가 생겼다는 게, 내 결핍을 시선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음에 편안함을 느낀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내가 500원 동전을 삼켰던 일화와 그 근원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나를 마구 축하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홀가분한 마음은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일까, 그만큼 노력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멋진 어른이고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홀가분한 내가 좀 더 되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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