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편입 결과 발표

by Jin

편입 원서를 전부 제출하고 정말 원 없이 신나게 놀았다. 정말 신나게 놀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계속 불안했다. 편입 결과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홀몸으로 21살 때 미국으로 유학 와서 2년 동안 정신없이 달렸다. 한국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제 내게 남은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번 편입에 모든 걸 걸었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혹시라도 실패할까 봐.


내 부모님은 나에 대한 기대가 크신 분들이었다.

항상 나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지만 그만큼 나는 부담과 압박을 받았다. 아빠는 내가 상위권 대학에 가길 바라셨다. 물론 어느 부모님이 자식을 안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겠느냐만은 우리 부모님은 그것이 유독 더 심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빠가 전화로 나한테 그랬다.

너는 UCLA, UC Berkeley, USC 세 곳 중 하나는 무조건 붙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한테 불효하는 거다.”

위에 쓰여있는 세 개의 대학은 내가 편입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대학들이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아빠 돈으로 유학 온 것이었으니까. 애초에 부모님 아니면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유학이었다.


부모님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친척들, 친구들한테도 나는 부담을 받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명의 친척이 나에게 기대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나는 무조건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나에게 보내왔다. 네가 저길 갈 수 있다고? 꿈깨.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이 모든 부담감이 한 데 모여 편입 결과가 나올 시기에 나에게 제법 긴장감을 주었다. 내가 붙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편입 동기들이 네가 원하는 학교에 붙을 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는 진짜 정말 모르겠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내가 지원한 학교는 총 6군데였다.

UC Berkeley (UCB)

UCLA

UC Sandiego (UCSD)

UC Santa Barbara (UCSB)

UC Irvine (UCI)

UC Davis (UCD)

모두 캘리포니아 주립대였다. 내 드림스쿨은 상위에 있는 두 개 학교, UC berkeley, ucla였다. USC는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USC는 사립대라 자소서를 새롭게 다시 써야 했다. 새롭게 쓸 시간도 없었고 붙는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쓰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UC Sandiego만 붙어도 정말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학교도 정말 좋은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저 학교뿐만 아니라 내가 지원한 6개 학교들이 전부 좋은 대학들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초점은 저 상위 두 개의 학교들에게만 맞춰져 있었다.




드디어 편입 결과일이 다가왔다. 편입 결과는 저

6개 학교가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 학교들은 불친절하게도 편입 결과 날짜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대충 이쯤에 결과가 나올 테니까 알아서 확인하라는 식이다. 동기들 소문으로는 UCSB의 결과가 가장 먼저 나온다 했다. 나는 거의 2주일간 매일 그 학교 사이트를 들어가면서 결과를 확인했다. 이 학교는 나의 애간장을 제일 많이 태웠었는데, 왜냐하면 내 결과가 다른 동기들에 비교해서 늦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결과가 나왔고 나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 인생 첫 대학교 합격이었다. 내 드림스쿨은 아니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다 떨어져도 갈 곳이 하나라도 생겼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이후 다른 대학교 편입 결과들이 차례로 나왔다.

UC Davis합격 통보를 그다음으로 받았고 UC

Irvine 도 합격했다. 이제 남은 건 UCB, UCLA,

UCSD 이 세 학교뿐이었다. 이 세 학교는 결과가 타 학교에 비해서 늦게 나왔다. 그만큼 나는 더 긴장한 채로 있어야 했다.


소문을 들었다. UCLA 합격 결과가 UCSD보다 더 일찍 나온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합격 결과가 바로 내일 나온다는 것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좋으니 빨리 좀 나와라 하는 심정이었다.


UCLA 결과가 나오는 당일 나는 긴장을 했다. 솔직히 너무 많이 기다려서 긴장을 안 할 줄 알았는데, 내 드림스쿨 중 한 곳이어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꿈을 꿨었다. UCB, UCLA, UCSD 세 곳 전부 떨어지는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내가 희망하는 대학을 전부 떨어지고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해명하고 있었다. 절망한 채로 말이다. 꿈에서 깼을 때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겐 악몽이었다는 뜻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속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꿈 내용이 너무 거슬렸다. 예지몽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소문으로는 당일 14시쯤 결과가 나온다 했었고 나는 오매불망 시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계가 14시를 거의 가리킬 때쯤 나는 너무 긴장이 됐었다. 고요한 공간에서 내가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룹인 트와x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긴장을 식혔다. 이 그룹이 어쩌면 나의 행운의 부적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들은 것도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룹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 3개를 연달아서 듣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뭔가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고 결과를 확인해보니 나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10번을 더 읽어보았다. 분명 합격이었다. 나는 내가 막 기뻐서 방방 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의외로 차분했다. 차분히 결과를 받아들이고 차분히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덤덤하게 축하해 주셨다.




잠시 뒤,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에 아빠한테 내 소식을 들었는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엄마는 거의 울먹이면서 나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해주었다. 결과에 의외로 차분했던 나는 엄마와의 전화에서 울컥했다. 그리고 울기 전에 엄마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효도를 한 것 같아서 기뻤다. 그 후로 한 일주일 간은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나에겐 이제 한 개의 결과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UCLA에 모든 힘을 쏟은 나머지 거짓말처럼 UC Berkeley에 불합격하고 말았다.

마치 어느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계속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에 내 한계를 느껴버린 것이다. 내가 제일 원하던 대학교에 떨어진 충격은 거의 한 달 동안 이어졌다.



근 2주일 동안 제일 큰 행복과 제일 큰 절망감을 맛보았었다. 내가 원하던 학교에 붙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꼈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처음으로 이뤘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2년 동안 내가 했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제일 원하던 학교에 떨어졌을 때는 정말 불행했다. 내 한계점을 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졌다. 내가 나약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이 불행은 전에 있던 행복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가 제일 원하던 대학에 떨어져서 일까?

혹은 불합격 통보를 합격 통보보다 더 나중에 받아서 일까?

나는 큰 행복을 얻고도 더 큰 불행 때문에 마음을 앓고 있었다. 참 바보 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가 불행한 이유가 나의 한계점이 드러나서 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계속 나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내가 진짜 불행한 이유는 '나랑 같이 공부했던 형들은 모두 그 대학을 붙었지만 나만 떨어져서'였다. 나는 이 이유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 옹졸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나에게까지 숨긴 것이었다.


내가 내면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봤다.

"너는 네가 원하는 대학도 붙었는데, 그 대학에 떨어진 게 그렇게도 슬플 일이냐"

누가 술은 항상 내면의 진실을 보여준다고 했던가. 결국 나는 내 입으로 진짜 이유를 말하고 말았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습관은 정말 안 좋은 버릇이다. 왜냐하면 비교를 하는 순간 비교대상이 끝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못난 사람과 비교를 하면 상대적 우위를 느끼면서 기쁨을 느낀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를 하면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면서 불행에 빠진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최대한 줄이고 나 자신만을 바라보려 했다. 내가 내면의 진실을 '옹졸'하다고 느낀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나와 그 형들을 비교하고 있었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형들과 나를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때문에 그 형들이 모두 버클리에 붙고 나 혼자 떨어졌을 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었다.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냥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 형들이 나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나의 위치를 다시 한번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애초에 ucla에 붙은 것만 해도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 형들은 나보다 열심히 했기에 버클리에 붙은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나는 그냥 나일뿐이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비교 대상은 과거의 자신이다.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이어진 커뮤니티 컬리지에서의 여행은 끝이 났다. 나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가 목표한 대학 중 하나는 붙었으니까. 솔직히 미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내 앞으로 이어질 유학생활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거둔 ‘절반의 성공’은 내 귀국길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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