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줄이는 비결
살면서 나와 의견이 맞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볼 것이다. 의견뿐만 아니라 성격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생활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이를 드러내며 불편함을 호소한다. 자신의 불편함을 드러내는 순간 상대방과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며 양보하지 않으면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갈등은 싸움으로 번지고 끝내 서로를 다치게 한다.
나는 이러한 패턴을 살면서 너무 많이 봐왔다. 자신의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게 된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있다. 정치, 젠더, 인종 등등 갈등은 많은 범주에 걸쳐있다. 또한 요새 SNS의 발달로 인해 많은 정보가 유입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토론의 장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건전한 토론이 되면 다행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서로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미 없는 싸움은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보인다. 나는 사람들이 한 사람에 대해 뒤에서 욕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느꼈다. 그 사람의 사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해심’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해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이해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공교롭게도 미국을 가서 이해심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인종,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여럿 있다. 이 사람들과 한데 모여 같이 지내려면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중국인 친구를 사귀었을 때 놀랐던 점이 있었다. 그들은 정말 매너가 없고 자기중심적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과 친해지고 같이 다니다 보니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중국인들 중 유독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외동이 많기 때문이다. 또 그들 문화 특성상 외동이 있으면 너무 오냐오냐 키우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이 어딜 가도 시끄러운 이유는 그들의 언어 특성 때문에 그렇다. 중국어는 다른 언어와는 다르게 '성조'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음의 높낮이로 구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더욱 시끄럽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진짜 놀랐던 점은 중국에는 줄을 서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카페나 식당을 들어가도 줄을 서지 않는다. 그냥 우르르 모여서 거기서 선착순으로 뽑는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처음 미국을 왔을 때 줄을 서지 않고 먼저 앞으로 가서 욕을 엄청 먹었다고 했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자라 왔고, 이것이 잘못된 행동인지 몰랐을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온 이상 그들도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천천히 적응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저 문화가 달랐던 것이고 나는 몰랐었다.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른 나라들은 정말 많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쓰지 않고 젓가락만을 사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하루에 5번씩 정해진 시간에 메카 방향을 향해 절을 한다. 인도에는 카스트제도라는 이름을 가진 신분제도가 아직 존재한다. 모두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이고,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하고 다를 뿐이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아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길의 첫걸음이다.
각자 문화가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의 성격이나 의견도 모두 다르다. 어떤 한 의견이 나오면 어떤 사람은 그것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여기서의 요점은 찬성 의견이든 반대의견이든 틀린 것은 없다. 그저 생각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서로의 의견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 알맞은 토론의 방식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싸움으로 번질 뿐이다.
나와 그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그다음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중국인 친구들과의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내가 그들이었어도 미국에서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그들이 이해가 되었고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면 다름을 인정하는 것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사정(事情)에 대해 아는 것이다. 그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혹은 그 사람의 사정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 나도 중국 친구들의 사정을 몰랐을 때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듣고 나서 다름을 인정 한 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능했다. 그 사람의 사정도 모르고 보여지는 부분만을 보면서 무분별하게 욕하는 것은 절대로 삼가야 할 행동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 이기에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 다르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나는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에서 환경의 탓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쌍둥이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다른데,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사정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첫 번째로 취해야 할 행동이다. 만약 그의 사정을 들어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그에 대한 비난은 삼가는 편이 좋다. 그가 만약 어떠한 위치에 있거나 직위를 가지고 있으면 그 자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고 그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을 해본다면 당신은 그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많은 갈등 때문에 어지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각자가 한 번이라도 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주면 이 세상이 조금은 평화로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