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행복하면 그만
내 인생은 언제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 난 첫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그 당시 나는 나름 이름 있는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로 진학하기를 희망했었다. 자사고는 중학교 내신이 50% 안에 들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고등학교이다. 그렇게 지원을 하고 나면 그다음은 일명 뺑뺑이라 불리는 랜덤 뽑기를 통해서 사람들을 골라낸다. 내가 지원한 고등학교의 경쟁률은 2.5대 1이었다. 솔직히 붙을 확률이 낮은 고등학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난 떨어졌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걸 떨어진다고? 진짜 운이 안 좋았나 보다. 결국 나는 정원 미달인 다른 자사고를 찾아서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아빠는 나에게 미국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었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고등학교의 친구들과는 친해져서 헤어지기도 아쉬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 대학생활에 로망이 있었다. 새터, 엠티, 축제 등에 참여해서 추억을 쌓고 남들과 같이 놀러 다니고 싶었다.
미국 유학을 거절한 나는 한국 대학 진학에 실패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수능을 망치고 내가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 내 선택지는 두 가지만 남았다. 재수 혹은 미국 유학이었다. 나는 당시 한국 대학 입시에 진절머리가 나있는 상태였다. 이런 짓을 한번 더 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미국 유학길을 선택했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편입을 준비할 때도 계획대로 되는 건 없었다. 외국인 친구들만 사귀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는 한국인이었고, 그 후 한국인 무리들과 어울리게 됐다. 친구에게 쉬운 수업을 추천받아 듣게 된 나는 정말 순조롭게 A를 받을 예정이었다. 기말고사 전까지 점수를 거의 잃지 않은 나는 A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다. 당시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인턴과 가족여행으로 인해 미처 기말 날짜를 착각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 수업에서 B를 받고 내 학점은 대폭 내려가게 되었다.
편입 결과도 그랬다. 나는 내가 아끼던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대학을 붙어서 같이 살 날을 꿈 꾸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나만 내가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나는 내가 아끼던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하게 되었다. 맨날 그 대학에 놀러 가서 붙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건만. 내 노력이 부족했나 보다.
물론 내 인생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기구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내가 계획했던 일에서 조금씩 비껴가니까 살짝 짜증이 났다. 왜 내 인생인데 내가 컨트롤을 못하지? 내 노력이 부족한 건가? 이때 살짝 깨달은 것 같다. 아 이런 게 인생인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모두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나쁜 건 아니었다.
내가 가고 싶던 고등학교를 떨어지고 정원 미달인 고등학교에 왔지만, 그렇기에 또 소중한 인연을 쌓을 수 있었다. 분명 내가 가고 싶던 고등학교를 갔었더라면 지금 있는 친구들은 사귀지 못했겠지.
미국 유학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그때 입시에 성공해서 한국 대학교를 다녔다면, 미국에서의 생활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알아서 만약 한국 대학교를 다녔다면, 맨날 술만 마시러 다니고 자기 계발, 공부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명문대로 간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그때 외국인 친구를 사귀지 않고 한국인들을 사귀었기에, 지금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그때 영어를 늘린다고 외국인 친구들만 사귀었으면, 지금쯤 외로워서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때 사귀었던 한국사람들은 내 미국 유학생활 내내 힘이 돼주었다.
한국에서 들은 온라인 수업에서 B를 받았던 것은 분명 나쁜 경험이었지만, 그 수업 덕분에 나는 LA에서 살아보게 되었다. 그 수업에서 A를 받고 버클리에 붙었다면 난 분명 4년이라는 유학생활 내내 버클리에서 살았을 것이다. 저 때의 나는 정들었던 버클리를 떠나 아무도 없는 LA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두렵고 무서웠지만, 결과적으로 LA에서의 삶은 좋았다. 새로운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날씨,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결국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게 되더라.
이것이 인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