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움이란

입학 자소서를 쓰다

by Jin

슬슬 자소서를 쓸 때가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닌 지 2년째 되는 해에 입학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보통 커뮤니티 컬리지를 2년 정도 다닌 후 내가 편입하고 싶은 4년제 캘리포니아 주립대로 입학 원서를 낸다. 입학 원서를 낼 때 대학에서는 주로 3가지를 본다.

학점

자소서

대외활동

학점과 대외활동은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는 2년 동안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자소서는 준비기간이 짧다. 보통 입학원서를 11월에 낸다고 가정하면 자소서는 여름방학 때부터 쓰거나 가을학기를 듣는 도중에 쓴다. 정말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여름방학 때 거의 다 써놓거나 끝내 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놀기 바빠서 자소서에 거의 신경을 못썼었다.


결국 가을학기가 시작하고 나서야 자소서를 쓰기 시작한 나는 지옥을 보았었다. 나한테 자소서는 정말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내 학점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내 드림스쿨에게 나를 어필하기 위해선 내 부족한 학점을 잘 쓴 자소서로 메워야 했다. 보통 주립대에서 편입 학생들을 고를 때 학점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자기소개서도 학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가을학기 내내 자소서를 쓰는데 매진했었다.




자소서는 University of California(캘리포니아 주립대, 줄여서 UC)의 공통된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정확하게는 공통 질문 1개, 그리고 질문 7개 중에 3개를 선택해서 답하는 선택형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통 질문은 자신이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 그리고 이 전공을 왜 선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적는 것이다. 선택 질문은 대충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창의적인가, 리더십을 보인 순간이 언제인가, 자신의 재능은 무엇인가, 인생의 고비를 어떻게 넘어보았는가 등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질문에 350 단어 이내로 서술을 하면 된다.


나는 딱 질문을 보는 순간 막막했다. 어떤 질문을 고르고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었다. 전공은 바꾼 지 얼마 안 됐었고, 질문들은 다들 내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어필을 하라는 것처럼 보였었다. 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나는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딘가 특출 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딘가 엄청 부족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 당시 나는 나에 대해 돌아볼 생각도 안 했었고 내가 누군지, 무엇을 잘하는지 조차도 몰랐었다. 그런 나에게 자소서를 적는 일은 너무 고된 일이었다.


가을학기를 들으면서 자소서를 적다 보니 너무 바빴다. 솔직히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었다. 나는 시간을 평소보다 더 투자하기로 마음먹었고, 평일에는 거의 항상 오전 10시에 나가서 새벽 2시에 돌아오는 삶을 반복했었다. 일상 속의 내 머리는 항상 자소서의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로만 가득했었다.


편입 자소서를 쓰던 그 당시는 내가 유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이다. 아무리 질문에 답을 하려고 애써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자책했다.

왜 나는 특출 난 것이 없을까?

왜 나는 인생을 살면서 특별한 경험이 없을까?

...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건가?


이런 자책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나는 결국 우울증에 걸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삶이 피폐해질 때쯤 나는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만 좋은가.


먼저 편입에 성공한 선배들, 그리고 나와 같이 자소서를 쓰고 있는 내 동기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그들이 쓴 자소서도 모두 읽어 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상담하고 계속 이야기를 해본 결과 나는 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뛰어난’ 에세이에 집착하고 있었다. 학점이 낮은 나머지 나는 자소서에서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완벽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남들과는 다른 에세이를 쓰겠다는 강박 아래에서 말이다. 사실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많았었다. 하지만 다 식상하다는 이유로 내가 고르지 않았다. 선배는 말했다.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완벽한 에세이가 뭔데? 자소서에 정답이 어딨어. 그냥 솔직하게 쓰면 되는 거지. 오히려 꾸며내는 것이야 말로 네가 생각하는 식상한 에세이가 될 거야.”


나는 그 말을 곰곰이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나는 계속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내 인생은 남들과 다른데 왜 그들에게 계속 맞추고 있었을까.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했던 일은 유일무이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유일무이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경험했던 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는 내 강점들을 하나씩 나열하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다른 사람들과 승부했다. 비록 진부해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경험과 강점일지라도 내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를 발전시켰는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것이다.


이렇게 마인드를 고치고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니 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내 안에 있는 나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자소서를 쓰는 속도는 전보다 늘었다. 오히려 쓸게 많아져서 어떻게 줄여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나는 무사히 기한 안에 자소서를 완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자소서를 쓰는 기간은 정말 지옥이었다. 시험기간과 겹치면 자소서 쓰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는 노력 끝에 숨어있던 ‘나’를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를 깎아내리는 짓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자소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내가 평범한 남들과는 다르고 스스로 뛰어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면 모르겠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정말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꾸미고, 지어내고, 과대 포장하려고 한다. 하지만 꾸미고 지어내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에세이와 닮아간다는 뜻이다. 오히려 유니크(Unique)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역으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솔직함으로 승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각자 자신만의 유니크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 에세이라는 큰 산을 넘은 나는 이제 합격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게 되었다.

keyword
이전 02화항상 모든 일은 마무리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