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을 시작하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간 이유

새로운 도전의 시작

by Jin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 말인즉슨 20년 내내 한국에서 살아왔다는 소리다. 20년 동안 외국인과 대화해본 적은 원어민 강사와 수업을 했을 때뿐이었다. 애초에 미국 유학은 내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에 나는 영어 공부를 가장 싫어했다. 수능이 끝나고 나는 영어를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했었다. 그렇다고 미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미국 드라마를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미국 유학길을 밟았다. 이 이야기는 미국에 대해 전혀 몰랐던 20살의 내가 새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점차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2015년 11월 29일, 내가 향한 곳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도시 근처에 있는 버클리 (Berkeley)였다. 정확히는 버클리 근처에 있는 알바니(Albany)에 살았지만 버클리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버클리로 간 이유는 캘리포니아 주립 대중 하나인 UC Berkeley를 가기 위해서 일부러 그 근처로 주거지를 잡았다. 나는 그곳으로 편입을 할 계획이었고, 편입을 하기 전에 나는 버클리에 있는 커뮤니티 컬리지(Community College)를 다니기로 했다. 커뮤니티 컬리지는 쉽게 말해 2년제 대학교이고 4년제 대학교로의 편입 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다.


나는 알바니에 있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들어가 살 계획이었다. 그 하숙집에는 모두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고 내 미국 생활 적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고맙게도 한국인 부부는 차를 끌고 나를 픽업해 주러 오셨다. 그렇게 나의 기나긴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정확히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노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어디 나서서 뭘 하는 것을 싫어했다. 결국 나의 학창 시절은 그저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생겼다. 내가 특출 난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성적도 평범하고 대외 경력은 하나도 없고, 결국 나는 대입의 쓴맛을 겪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대학교를 모두 떨어졌지만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자의적으로 한일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이 피아노 학원 가라니까, 태권도 학원 가라니까, 수학학원 가라니까 다닌 기억밖에 없다. 공부도 학교 선생님, 부모님이 해야 한다니까 한 기억밖에 없다. 모두가 다 좋은 대학교, 명문대만 가면 성공하고 행복해질 것이라 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다 떨어진 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이제 뭘 해야 하지..? 재수를 준비해야 하나..’

그 타이밍에 아버지가 나에게 미국 유학을 제안했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도 나에게 미국 유학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완강하게 거절했었다. 내가 좋은 대학교를 갈 줄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남들과는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버지한테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당시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었다. 그러곤 나한테 말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

남들 사는 것만큼 사려면 그런 마인드로는 안돼. 최대한 열심히 살아도 평범하게 못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 너도 최대한 발버둥 쳐야 해.


아버지에게 미국 유학 제안을 받은 후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리스크가 큰 결정을 내가 자의로

‘선택’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소극적이고 평범함만 추구해온 나는 결국 미국행을 결심했다. 내가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뭔가 나에게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 나중에 하나도 내세울 게 없는, 특출 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겠구나를 느꼈다.


또 하나는 내가 내 인생의 길을 선택하면서 더 이상 수동적이 아닌 내 의지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이 나 대신 그려주고 있었던 도화지를 다시 되찾아 온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미국행은 나에게 삶의 활력을 다시 줄만한 도전이었다. 한국 입시에 지치고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나는 미국행이라는 큰 도전을 하면서 나의 인생에 과제를 하나 더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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