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유효기간
인생은 참 어렵다. 그리고 힘들다. 인생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돈, 명예, 그리고
사람이다. 이 세 요소들은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인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중 인간관계는 요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문제이다. 왜 그럴까.
사람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을 위해서, 또는 사람에 의해서 살아간다. 돈을 벌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해야 하고, 명예를 얻으려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사람은 사람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배신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안 맞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몇몇 좋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종종 힘들어한다.
오늘 나는 나쁜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간관계의 ‘유효기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가깝게는 음식에도 있고 인간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음식이나 인간의 유효기간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끝을 대충 가늠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이 사람과 오랫동안 연락하며 지낼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끊어진다. 이 사람과는 평생 친해질 것 같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친해져 있다. 마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나의 인생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유학길을 택했다. 유학길을 택했다 보니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토플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거기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의 나는 스무 살이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할 시기였다. 그 사람들은 나와 너무 잘 맞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나는 그 사람들과 평생토록 연락하며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학원을 옮기는 순간 이 인간관계는 끝이 났다. 서로 공유하는 일상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니 연락은 소원해졌고 결국 사이도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이상했다. 그 당시에는 누구보다도 친했던 사이였는데, 그렇게 끈끈했던 관계가 이렇게 쉽게 끊어진다니. 이렇게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처음 느꼈다.
미국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어학원을 다녔었다. 여기서 영어실력을 늘리고 대학교를 편히 다니기 위함이었다. 여기서도 나는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나는 젊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웠다. 같이 여행을 다니고, 매일마다 같이 놀면서 친밀감을 쌓아갔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오래 연락할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또다시 무너졌다. 한 번의 트러블로 우리 그룹이 와해가 된 것이다. 매일 연락하던 사람들도 끊겼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이란 한 번에 불타올랐다가 한 번에 식을 수 있는 것이구나.
이것은 친구사이뿐만 아니라 연인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해서 사귀게 된다. 이윽고 둘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베스트 프랜드이자 동반자가 된다. 어쩌면 가족들 보다도 더 친밀하다고 느낄 수 있다. 둘은 연애를 하면서 천년 기약을 맹세한다. 결혼 등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서로의 미래를 그린다. 오래 사귄 커플들은 더한다. 그들의 폭발적인 사랑과 설렘은 끊겼을 지라도 그들은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이이다. 그만큼 편하고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도 헤어진다. 오래 사귀든 짧게 사귀든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도 헤어진다. 아, 요새는 결혼을 해도 많이들 헤어지더라. 그들이 헤어지고 나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이상하지 않는가. 한때는 서로가 천년 기약을 맹세하고, 같이 미래를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을 때가 있었을 텐데 ‘헤어진다’라는 행위 하나만으로 그들은 지나가던 행인보다도 불편한 사이가 된다. 연인들도 결국 이 이상한 인간관계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이 사람과는 오래 연락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한 사람과 유대감이 깊어질 때가 있다. 그 사람과 만났을 때 첫인상이 별로였으나 어쩌다 보니 계속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괜찮은 점을 알게 된다. 의도치 않게 계속 연락을 주고받게 되고 친해진다.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는 꽤 있었다. 이쯤 되면 정말 알 수가 없어진다. 처음 봤을 때 나는 과연 누구하고 친해질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운명 같은 만남도 있다. 이 사람과 나는 서로 얼굴만 아는 사람이었다. 마치 내 친구의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길거리에서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하기 일쑤였다. 나에게 이 사람은 그냥 지인도 아닌 아는 사람 1이었다. 그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던 사람인데 어느 한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자주 다니던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 입구에서 그 사람을 마주친 것이다. 내가 1년 동안 거기서 공부하면서 지인을 마주친 적은 거의 없었기에 나는 반가워했다. 어떻게 이곳에서 공부하게 되었냐를 물어보다 보니 우리는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첫 만남에 공부하는 것을 잊고 서로 3시간 동안 수다를 떤 것이다. 나는 면식만 있던 이 사람이 나와 대화 코드가 이렇게 잘 맞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아마 그 사람도 못했을 것이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게 되었다. 아마 그때 내가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면, 혹은 서로 인사만 하고 넘어갔다면, 우리 둘은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많은 인간관계를 맺어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인간관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바로 ‘환경’이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대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서로 마음이 잘 맞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급속도로 친해진 사람들도 있고, 대화 코드가 잘 맞아서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맞아도 서로가 자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친해지기 어렵다. 결국 친해지려면 서로가 공동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같은 학교를 다닌다던지, 회사, 교회, 모임 등등 자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자주 보다 보면 자신과 처음에 마음이 잘 맞지 않았더라도 어느덧 그 사람과 친해져 있을 것이다.
서로 공유하고 있던 환경이 갑자기 사라지면 친했던 사이도 서먹해지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3년 동안 매일 보고 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국 고등학교를 나오면 친한 그룹이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환경으로 찢어지다 보면 연락이 점차 줄어들고 결국 만나지 않게 되는 친구들도 있다. 물론 정말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들과는 계속 연락하며 지내겠지만, 대부분은 연락이 어느 순간 끊기고 만다. 이런 걸 보면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
이런 현상은 사실 커플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로가 사랑하고 마음이 잘 맞아서 연인 관계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공유하고 있던 환경이 하나 둘 사라지면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서로 매일 만나다가 어느 하나가 먼 곳으로 가버리면 매일 보기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연인 중 하나가 유학을 가버린다거나 군대를 가버리면 서로 만나는 빈도가 갑자기 확 줄게 된다. 가끔씩이라도 만나면 다행이지만 아예 못 만나는 상황도 생긴다. 그러면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마음이 잘 맞아도 100에 99는 헤어진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 잘 맞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관계에 실망감을 많이 느껴 봤기 때문이다. 분명 서로 친했었는데, 나는 그 사람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멀어지고 연락이 끊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자책했다.
내가 재미가 없나?
나에게 더 이상 연락하기 싫은 건가?
그러면서 끊어진 인간관계에 대해 나 혼자 우울해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나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연인관계든 친구관계든 가족관계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공유하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많은가 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관계가 느슨해지면 더 이상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친해지지 않을 운명이었나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