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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Sep 17. 2020

24. 과민성 방광 이렇게 나았다

부제: 요역동학 검사 후기


 브런치에 6달 만에 글을 쓴다. 그간 왜 글을 쓰지 않았냐면… 덜 아팠기 때문이다. 운 좋게 섬유근육통에 대한 이해가 있는 물리치료사 선생님을 만났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웠다. 도수치료와 운동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작년 연말보다 훨씬 활동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코로나가 나를 막았지만. 진통제 없이 외출한 날도 있었다. 취미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2편 연속으로 영화를 보았다. 기적적이었다.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몸이 아파졌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른다. 섬유근육통에 이유가 어디 있어. 지 꼴리는 대로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사람을 아주 개 빡치게 해 진짜.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대개 분노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태풍 몇 개가 한반도를 휩쓸었고, 기나긴 장마로 천장에 물이 샜고, 하여튼 구린 날씨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도로 시름시름 아파졌다. 그리고 트라마돌에도 통증이 잡히지 않는 오늘, 방치했던 브런치 생각이 났다. 제 감정의 쓰레기통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런 여러분께 과민성 방광(신경인성 방광)이 어떻게 나았는지 수기를 남깁니다. 전편에 내가 과민성 방광으로 받은 고통을 하소연해놓았으니 참고하세요. 베타미가정을 꾸준히 복용했지만 과민성 방광은 좆도 나아지지 않았다. 비뇨기과 의사는 내가 어리기 때문에 방광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낮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요역동학 검사를 하자고 했다. 10월 말에 요역동학 검사 일정을 잡았다.


 2019년 10월 말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뭐가 힘들었냐면,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는데, 좋아하던 아이돌이 미친 과거사 대형 사고를 터뜨리고 그룹에서 탈퇴했다. 1년이 지나고 생각해봐도 좆같다…. 덕분에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검사 당일 아침에 친한 지인과 절연을 하게 되면서… 이 얘기를 여기다가 해서 어쩌나 싶지만…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손을 덜덜 떨면서 병원에 갔다.



 여기부터 요역동학 검사 후기. 중요한 건 여자가 썼다는 것. 검사 전에 쫄아서 검색을 많이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여자가 쓴 검사 후기가 없었다. 남자의 후기는 있었음. 그런데 남성과 여성의 비뇨기 구조가 완전히 다르니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는 아주 생생한 표현을 사용했으나… 나한테는 그런 기관이 달려있지 않은 걸…. 따라서 실질적인 정보가 전무한 상태로 검사실에 들어갔다가, 해당 연도 최고의 충격과 공포를 느꼈으므로 글을 쓴다.


긴 글 읽기 싫은 사람을 위해:


 별점 후기 (5점 만점)

 검사 중 통증 ★★☆

 검사 후 통증 ★★★★☆

 수치심 ★★★★★

 내가 어쩌다가 가랑이에 관을 꽂고 여기 앉아서 오줌을 싸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자괴감 ★★★★★


 주관적인 수치입니다. 별로 안 아팠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강철 요도를 가졌는지 통각이 없는 건지 뭔지. 누군가 한 명쯤은 나 같은 사람이 이 후기를 읽고 도움을 얻길 바랍니다. 혹은 공포를 얻거나. 일단 검사실에 들어가면 전문적으로 보이는 검사자가 나를 안심시켜준다. 그리고 나를 어딘가에 앉힌다. 배뇨장애가 있다면 병원에 갈 때마다 앉게 되는 요속 검사 변기 그거인데. 안 앉아본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평범한 변기가 아니라 불편하고 딱딱하고 애매하게 높이가 낮으며, 소변을 보면 기계음을 내서 사람을 정신적으로 압박합니다. 짜증 나요.


 다음으로 수많은 장치를 나의 엉덩이와 대퇴부에 붙인다. 괄약근의 기능을 평가하는 이한 전도체라는데 물리치료할 때 붙이는 움찔움찔 스티커 비슷함. 그리고 요도에 관을 꽂는다. 이게 제일 아플 줄 알고 겁먹었는데, 넣었다가 뺐다가 하면 익숙해지기도 하고, 아픈 건 찰나라서 참을 만했음 비명은 나왔지만. 또 항문에 뭘 집어넣는다. 이건 복부의 압력을 측정하기 위한 기구라고 하네요. 그러면 나는 이제 존재하는 대부분의 구멍에 뭐가 꽂힌 채로 이상하게 생긴 변기에 불편하게 앉은 사람이 된다.


 검사 중의 고통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저런 상태로 소변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과민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나는… 엄청나게… 긴장했다. 소변을 자연스럽게 보지 못 하니까, 요속 검사는 포기하고 바로 도뇨관으로 방광에 물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방광에 소변이 찬 상황을 만들어서 환자의 배뇨 기능 살피는 검사인데. 배뇨량을 체크해야 해서 요도에 관을 꽂은 채로 오줌을 싸야 한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상황.


 결과적으로 나는 배뇨에 실패했다. 관을 꽂은 채로 소변을 보라는데 그게 아무리 해도 안 됐다. 검사자와 단 둘이 좁은 방에서, 물론 커튼으로 가려주긴 하지만, 몸에 검사 기기를 주렁주렁 달고, 검사자는 나를 암묵적으로 재촉하는데, 요도에 관이 꽂혀있는 채로 소변을 본다… 배뇨장애를 겪는 환자가…? 이게 가능…? 물론 가능하니까 시행되는 검사겠지요. 나는 당시 불안 장애도 심했고 정신적으로 나약한 상태였으니까 더 힘들었으리라고 추측한다. 드물게 검사에 실패하는 사람이 있다고 위로를 받았다. 왜 항상 그게 나야?


 다행스럽게도 소변을 보지 못 했다고 해서 모든 검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방광에 채운 생리식염수의 양과 참고 있을 때의 상태만으로 최소한의 기능 평가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보통 검사 시간이 30분~1시간 걸린다는데 나는 1시간 넘기고도 소변 보기에 실패했다. 검사자는 내 방광에 계속 계속 생리식염수를 넣었고, 나는 그걸 더럽게 잘 참았다. 왜? 왜!? 뱃속에 340ml의 생리식염수가 들어서 아랫배가 빵빵하고 더부룩하기까지 했으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검사실에서 탈출하여 병원 화장실 첫 번째 칸에 들어가자마자 1시간 동안 못 봤던 소변이 나왔음. 허무했다. 배뇨 장애에 정신이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나도 내가 짜증 다. 검사자 분도 제가 짜증 났겠지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내가 검사에 시간을 오래 소요했기 때문인지, 검사 후 소변을 볼 때 충격적인 통증이 찾아왔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요도로 면도칼을 싸는 기분이었다. 중요해서 밑줄 그음. 나는 놀라서 혹시 내가 바늘이나 칼날을 쌌나? 하고 변기를 확인했는데, 변기가 새빨갰다. 비주얼 쇼크.


 검사 전에 설명을 들을 때는 혈뇨가 ‘비친다’고 들었으나, 실제로는 비친다기보단 각혈에 가까웠다. 배뇨 중에도 배뇨 후에도. 검사 이후 이틀 간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쌌다. 화장실에 가기 두려워질 정도였음. 진통제 필수. 또 검사 후에 요로감염 방지 목적으로 고용량의 항생제를 받는데, 이걸 이틀 먹고 약물 부작용으로 추정되는 이상 증세(두통, 메스꺼움, 극도의 어지러움)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오구맥정 이 새끼가 범인인 듯. 하여튼 생각보다 체력을 요하는 검사니까 컨디션 조절하세요.


 결과는 뭐, 내가 모든 검사에서 받았던 결과와 마찬가지로 정상이랬다. 방광 보톡스 얘기를 듣고 심히 걱정했는데, 방광 자체 기능에는 이상이 전무하므로 시술조차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 내가 나의 방광의 튼튼함을 실감했다는 것. 평소 절박뇨가 오면 5분도 못 참았던 소변을 1시간 내내, 그것도 340ml나 담고서도 참았다. 그 고통스러운 경험이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나의 방광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내가 느끼는 요의는 가짜 요의다. 나는 코카콜라 뚱캔만큼 소변을 참을 수 있다.


 자각이 들고 나니, 거짓말처럼 과민성 방광이 사라졌다. 구라 같겠지만 정말로 사라졌다. 몇 달을 고생했는데 결국 마음의 문제라니… 이 머저리 같은 육신…. 요역동학 검사는, 내가 병원에서 다시는 받기 싫은 검사 1위로 영원히 꼽 만큼 고통스러운 검사였다. 그치만 그걸로 나았으니까 검사를 후회하진 않음. 금방 베타미가정을 끊었다. 약을 끊어도 소변을 참을 수 있었다. 허무하게 나았다. 섬유근육통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사라졌으면 좋겠다.


 요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빈뇨와 절박뇨 증세가 나타난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나는 소변을 340ml나 방광에 담고도 멀쩡한 사람이야… 내 방광은 건강하고 튼튼해…’라고 자기 암시를 한다. 그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아진다. 나는 건강 염려증이 심하고, 내 몸에 이상이 있을 거라는 망상적 사고가 파도처럼 덮쳐서 공황이 올 때도 있는데. 그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있으면 좋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는, 당뇨병이 없는데도 집에 혈당계를 들여놓고 공포가 찾아올 때마다 손 끝을 찌른다고 한다.


 요역동학 검사가 나에게 그러한 지표가 되어 주었다. 과민성 방광이 약물로 나아지지 않으면 아마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권하시겠지만, 제게는 좋은 검사였습니다. 이미 병원에 내원하고 있다면 질리도록 들었을 소리일 텐데, 소변을 최대한(이라고 해봤자 과민성 방광이 있다면 2시간도 힘들 것) 참아보는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방광에 자신감을 가져보세요. 더 자세한 정보는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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