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근황
두통 얘기를 하다가 또 갑자기 사라졌었다. 이유: 섬유근육통이 나아져서! 이 기쁜 근황을 보고하러 왔다.
완치는 아니다. 분명 여기저기 통증이 있고 수면장애도 심한데. 아프던 시절의 일기를 최근 다시 읽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아팠다고? 언제… 그렇게 아팠다고? 아팠던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사람은 간사하다. 다시는 섬유근육통을 주제로 새 글을 못 써낼지도 모른다. 아니, 못 쓴다니? 안 쓸 거다. 가능하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더 이상의 호전은 욕심 같으니 바라지 않겠음. 아직 때때로 또한 여전히 아파도, 지금 나는 최소한의 생활을 한다.
최소한의 생활이란, 하루 두 끼 내지 세 끼를 먹고 컴퓨터에 앉아 글쓰기며 게임 따위의 취미생활을 하고, 허리가 뻐근해지면 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하다가 침대로 기어 올라가, 거치대에 휴대폰을 끼우고 영화를 주구장창 관람하는 삶이다. 대박이지? 행복하다. 얼마 전에 산책을 나갔다가 행복해서 눈물이 났는데, 얼마 안 남은 횡단보도 신호를 보고 내가 뛰어서 건넌 것이다.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넜다! 이게 두고두고 행복해서, 집에 와서 울었다. 내가 얼마나 남들처럼 걷고 싶었는지. 얼마나 남들처럼 뛰고, 혹은 앉거나 서 있고 싶었는지.
왜 상태가 호전되었는가, 추측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잘 맞는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24화 참조) 많은 도움을 받아서 통증을 줄였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을 제거*했다. (중요하니까 별표. 진짜 짜증 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거라는 것을 나도 안다.) 나는 작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복학을 완전히 포기했다. 개인적으로 대단한 결심이었다. 보통의 20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버렸다. 어쩌면 욕망에게 내가 버려진 걸지도. 어느 쪽이든 됐다. 나는 낙오했다. 인정할게. 내 몸은 성치 않다.
대신, 집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이버대학교에 편입 원서를 넣었다. 불합격하면 병이 복귀할 것 같아서 걱정 중. 합격 발표 일자까지 매일 디아제팜을 2mg씩 추가로 복용하고 있음. 얘기했던가? 내 정신병은 대학 부적응에서 왔다. 16학번으로 입학한 이래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다. 그래도 나에게 대학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거였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이 다… 그렇잖아?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12년 동안 대학 입학을 위해서 살다가 후진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마저도 졸업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죄다 헛짓거리였던 거잖아?
회의감이 끊이질 않는데 억지로 자기 위로하며 지낸다. 대졸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많다고, 당장 내 몸이 걱정이지 대학이 걱정이냐고, 졸업도 못 하는 몸을 갖고 무슨 취업을 할 거냐고, 일단 나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모르겠어. 내가 아파하는 동안 공백이 된 시간은 내 결함이 될 텐데. 결함을 메꾸려면 뭐든 해야 할 텐데. 뭐든 할 만큼 나는 능력과 야망 있는 사람이 아닌데. 번듯한 졸업생도 취업이 어려워서 큰일이라는데. 미래가 무섭다! 이하 구구절절한 걱정.
어쨌든 나는 4년대 대졸을 포기한다. 아! 이거 쓰다 보니까 또 죽고 싶어 졌다. 정신병자들 일기 쓰지 말라던데 왜인지 알겠다.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을 문장으로 정돈하여 늘어놓고 나면, 거기에 고개를 처박고 익사하고 싶어 진다. 그래도 죽고 싶은 마음까지 잘 참고 있다. 엄마가 말하길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싶었다. 대회에서 상이나 받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번듯한 직업을 갖고 어찌어찌 독립해서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했다. 무리였습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부터 틀려서 돌아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좋은 말을 해주었다.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라 딸(25세, 무직)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살아도 좋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무기한으로 살고자 한다. 누구에게는 한심한 얘기로 들리겠지. 낙오자의 얘기로 들리겠지. 사실이다. 한심하게 여기지 말고 고마워했으면 좋겠어. 나 같은 사람이 아래서 깔아줘야 누구는 A+를 받고 누구는 1등급을 받고 그럴 거 아니야?
영원히 무직은 아닐 거야. 이런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물론 브런치에 글도 가끔씩 쓰고. 내키지 않는 일도 어른스럽게(!) 해가면서. 보다 미래에는 사랑하는 언니랑 온수가 콸콸 나오는 집에서 살아야지. 귀여운 햄스터를 기르면서 살아야지. 살아야지, 살아야지, 라고 백 번쯤은 적어야만 머릿속의 ‘죽어야지’가 희미해진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살아야지. 살아야지.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