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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난 Jun 30. 2021

27. 무섭지 않다

정말 안 무섭다니까?


1학기를 마쳤다. 스스로에게 박수. 개강하고 3월부터 4월까지는 아파서 정신이 없었다. 원서를 넣을 무렵 몸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강의를 원활하게 들을 만한 상태가 아님을 알았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씩 도수치료를 다니고, 나빠지면 세 번까지 받으며, 금이 간 항아리를 급하게 땜질하는 모양으로 살았다. 거기에 더해 4월에는 간만에 몸살까지 났다. 울면서 수업을 들었다. 과제도 울면서 했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치렀다. 성적이 좋았다. 전체에서 4문제 틀렸다. 자신감이 생겼다. 어, 나도 할 수 있나…? 내 머리 괜찮은가…? 그러면서 천천히 통증이 줄었다. 정형외과에서 왜 섬유근육통을 정신병 취급했는지 알겠다. 내 몸은 정신에 지나칠 정도로 휘둘린다. 간사한 고깃덩어리 같으니라고.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환자 버전의 일상이 아니라 보통 사람 기준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기말고사를 봤고 마지막 과제까지 꾸역꾸역 해서 냈다. 그러자 종강이었다!


물론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팔에 쓰라린 신경통이 오고(겉으로는 멀쩡), 허벅지가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아프고(역시 겉으로는 멀쩡), 방광이 예민해진다. 불면증은 전혀, 하나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섬유근육통이 나에게 말한다. 너… 내가 있다는 것 잊지 않았지…? 섬뜩한 방식으로 경고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자주 잊어버린다. 병증이 온고잉인 정신과 약도 종종 까먹는데, 그를 마음에 새겨두었을 리가. 무엇보다 뭐가 예쁘다고.


여전히 통증을 다루지는 못 한다. 섬유근육통 환자 중 누구도 통증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을 거다. 물론 진통제가 있지만, 진통제는 병을 낫게 하는 약물이 아니니까. 당연히 진통제 먹어도 계속 아플 때도 있고. 짜증나게. 그렇지만 요즘은 통증이 무섭지 않다. (요즘은…이다.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아마도 당분간은.)


통증이 물이라고 치자. 과거의 나는 멀쩡하게 서 있다가 갑자기 2미터 풀에 등이 떠밀린 기분이었다. 풍덩 빠져서 머리 꼭대기까지 잠겼다. 아프고 무서웠다.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준비 없이 입수를 당하면 엄청 고통스러울 걸. 나는 수영은 하는데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되게 무서워한다. 정석적인 자세의 자유형이 싫다. 귀에 물 들어가니까. 근데 헤엄 자체는 그럭저럭 잘 치거든? 그래도 누군가 나를 2미터 풀에 냅다 빠뜨린다면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서 그를 물에 처넣을 것이다.


그만큼 야마가 도는 사고를 당한 기분이었다. 깊은 풀장에 빠져서 대처도 못 하고 얼마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파도가 치는 해변, 물가에 서 있다. 설령 파도가 밀려와 바닷물에 젖어도 그것은 바닷물이 잠깐 나에게 머무르는 것 뿐이다. 무릎까지 바닷물에 잠겨도 전처럼 무섭지 않다. 머지않아 파도가 제 자리로 돌아가며 발목이 드러나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썰물이 오고 물이 빠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지극히 후험적인 주장이라고 하면 반박할 말은 없다. 나부터도, 바로 위 문단을 1년 전의 나에게 읽어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듯하다. 당연하다 섬근통은 겁나게 아프고 아픔은 직관적이거니와 강렬하여, 머릿속을 비우고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생각밖에 안 들도록 만드니까. 아프면 아프고 아픈 것이다. 풀장이고 파도고 나발이고 당장 아프다니까? 어쩌라고?


어쩌라고 이런 글을 썼느냐면, 미래의 내가 이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언젠가는 통증이 사라지는 날이 오니까 당장 물에 젖어도 전처럼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말았으면. 설령 고통이 계속 되어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살아진다. 어떻게든, 언제나, 방법은 있다. 주변 사람을 돌아보렴. 내 무지막지한 청구를 꾸준히 감당해주는 고마운 실손보험도 떠올려 보고. 섬유근육통은 죽도록 아프지 죽는 병이 아니니까. 혹여나 나중에 섬근통이 재발하여 죽고 싶어지면, 아니 분명히 재발할 테니까 그때가 오면, 내가 이 포스트를 읽길 바란다.


그러라고 쓴 글이다.


더불어 앞으로 브런치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 이게 내 장래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은데. (아팠고, 아프고, 아플 것이라는 내용으로 가득한 블로그라니…. 병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이 아직이라서 몸을 사리게 된다.) 천천히 고민해야지. 진짜로 고민해서 계속 무언가 쓸 거니까 카카오는 작가 자리를 박탈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P.S. 이전 게시글에 댓글로 호전을 축하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전부 읽었는데, 어떤 답글을 달아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어요. 선생님도 나아지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이거 다 내가 환자한테 하지 말라고 했던 소리잖아? 역지사지가 안 되는 인물이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용히 있었는데요…. 엄청나게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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