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난 Sep 17. 2020

25. 서러운 두통



 ‘병원에 버림받았다’고 직접적으로 느낀 적이 세 번 있음.


 간접적으로는 많다. 섬유근육통도 우울증도 꾀병 취급받기 좋은 질환이니까. 검사 결과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대체 왜? 그러한 시선은 익숙하다. 그런데도 상처를 몇 번 받았다. 첫 번째는 B 정신과에서 겪었던 일. 나중에 따로 한 편 잡고 쓸 예정임. 두 번째는 <22. 더는 해드릴 치료가 없어요>에 썼던 날. 의사에게 악의는 없었겠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류마내과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무너졌다. 세 번째는, 19년도 10월에 갑작스럽게 두통이 심해진 시기였다.


 나는 원래 두통이 없었다. 엄마는 편두통을 달고 살았고 심해지면 구토를 했다. 만성적으로 편두통에 시달리는 친구가 몇 있었다. 나는 가까운 곳에서 그걸 보면서도, 그 고통이 확실히 와 닿지 않았다.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학창 시절부터 요통에 시달렸지만, 두통으로 진통제를 먹은 적은 손에 꼽았다. 그래서 막연하게 ‘다른 데는 몰라도 머리는 안 아프겠지’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정확히 두통이 시작된 시기는 <15. 두통의 시작>에 적었던 6월이다. 6~7월 경 통증의학과와 정형외과에 내원했을 때, 긴장성 두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7월과 8월을 넘겼다. 요통은 그대로였으나 두통은 호전되었으므로. 류마티스 내과를 전전하며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던 시기에도, 한방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믿어 꾸준히 약침을 맞았다. 그리고 10월 2일 아침, 두통과 목 통증이 재발했다. 다이어리에는 ‘어제 숙이고 책을 봐서 그런가?’라고 적혀 있음. 고작 그 정도로….



 이 시기는 일기에 자세하게 적혀 있어서 직접 옮긴다. 다시 읽어보니 심한 표현이 많다. 극단적인 생각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지금은 괜찮아져서 평온하게 옮겨 적을 수 있습니다.


 10월 3일(목) 종일 머리가 아파서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참수형을 선고받았는데 목이 한 번에 안 잘려서 못 죽는 느낌이었다. 트리돌을 먹었고 조금 덜 아파졌다. 내일 침을 맞으러 갈 생각이다. 어떤 자세로 있어도 머리하고 목이 아프다. 소리에 민감해져서 저녁 시간에 계속 귀를 막고 있었다. 대화 소리, 물소리, 문 여닫는 리가 찌르는 것처럼 들린다. 빛에도 민감하다. 낮에 방에서 냄새가 났는데도 커튼을 열어 환기를 할 수가 없었다.


 10월 4일(금) 목 뒤가 계속 뻣뻣하고 머리가 아프다. 한의사가 목을 돌려보는데 거의 안 돌아갔다. 그분은 섬유근육통도 침을 꾸준히 맞으면 낫는다고 했다. 이제 안 믿는다. 꼬리뼈에 칼집을 내놓고 상체와 하체를 누가 잡아서 당기는 것처럼 아프다. 허리와 골반이 끊어질 것 같다. 집에 돌아와 피곤해서 잠깐 잤는데, 시달리는 것처럼 힘든 악몽을 꿨고 일어나자 통증이 심해졌다. 지겹다고 생각했다.


 10월 5일(토) 낮 2시에 기상. 일어나자마자 인후통과 오른쪽 귓속 통증. 오른쪽 뒤통수에 심한 찌름 두통을 느낌. 감기라고 생각하고 3시경 이비인후과 약 먹었으나 호전 없음. 오후 7시부터 통증이 심해짐. 10분~20분에 1번 꼴로 칼로 쑤시는 듯한 두통이 와서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귀가 먹먹하고 귓속 깊은 곳에 충만감이 느껴지기 시작함. 9시경 응급실에 감. 피검사, 소변 검사, 조영제 없는 뇌 CT, 엑스레이 상으로 아무런 이상 없음. 응급의학과 의사는 통증 이유 모르겠다고 말함. 삼차 신경통이나 대상포진이 의심되나, 대상포진은 피부 병변이 올라오기 전에는 확진이 어렵다고 함. 트리돌 수액 2팩 맞고 귀가. 통증은 주기가 길어졌을 뿐, 여전히 귀갓길에 악! 악! 하고 비명 지르며 주저앉을 정도로 심함. 1부터 10까지 중에 8~9의 통증. 더 할 수 있는 처치가 없었고 집에 오 12시 가까운 시각이라 취침 약 먹고 누움. 잠들기 직전까지 두통 계속.

 종일 통증에 시달려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트리돌과 집에 남은 약을 다 먹고 죽을까 고민했다. 아픈 몸에 질렸고 아픈 사람 취급도 질렸고 아파서 뭘 못 하는 거, 의사를 보는 거, 아무리 의사들 봐도 내가 왜 아픈지 모르는 거 지겹다. 하지만 지금 죽어도 별 것도 아닌 병으로 자살했다고 시체까지 조롱당할 걸. 요새 목과 허리 안 아픈 사람 어딨냐고 비웃음 당할 걸?


 10월 6일(일) 나는 내가 살고 싶어 질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 사는데 미련이 없으면 아프다가 죽어도 그만인데, 살고 싶어지면 이렇게 고통스럽게 병원 다니며 검사하고 의사들의 나이롱환자 취급받으면서 살아야 하거든. 그렇게는 살기 싫어. 나는 언젠가 죽을 거야. 그건 시기의 문제지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이렇게는 살 수가 없고 죽어야 돼. 아무도 나를 막을 권한은 없어. 왜냐면 오직 나만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가 살아있으면서 느낄 고통을 책임질 수 없고 낫게 할 수도 없잖아.

 통증이 눈 뜨자마자 느껴졌고 목의 인후통은 가라앉은 것에 비해, 뒤통수의 오른쪽 두피와 뒷목의 살에 쓰린 신경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기적발작하는 두통이 종일 있었다. 응급실에 갔으나 진통제는 줄 수 있지만 발진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며 진통제만 처방. 그런데 대상포진이 의심된다는 얘기는 계속 한다. 뭘 어쩌라는 거야. 주말이라 다른 과는 갈 수 없었다. 트리돌 맞고 귀가했다.

 송곳을 뒤통수에 쿡 쑤셔 박는 감각. 무서웠던 것은 그게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거. 밤이 되자 두통이 잦아들었다. 어림 잡아 한 50번쯤 그런 발작적인 찌르는 두통을 겪었다. 그 단 1초 고통스럽다. 칼에 찔리는 고통은 단 1초였는데, 1초가 무서워서 죽으려고 했던 거다. 두통이 잦아든 뒤에야 ‘그건 고작 1초짜리 두통 50번, 50초였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의 내가 1초를 못 참아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없길 바래.


 10월 7일(월) 아침에 일어나자 여전히 두통, 두피와 피부 통증이 남아 있어서 밥 먹고 피부과에 갔다. 얘기를 듣고 증상은 대상포진과 굉장히 흡사한데, 다만 신경절 2개에 걸쳐 침범한 통증 양상이 보이기 때문에 확답할 수가 없다고. 또 시기 상 발진이 오를 때가 되었는데 이것도 조금 더디다고. 그러나 예방적 차원에서 항바이러스제를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으니, 먹다가 수포가 생기면 더 처방받으러 오고 아니면 다른 과를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팜비어 250mg을 하루 3회 먹었음. 뜬금없이 왼쪽 손목 안쪽에 신경통 생김.


 10월 8일(화) 두통이 남아있다. 숫자로는 3~4 정도, 쿡 쿡 쑤시고 사라지는 통증. 위치가 조금 아래로 옮겨 간 느낌이 든다. 이비인후과에 귓속 통증이 신경 쓰여서 갔고, 통증 양상이 대상포진과 아주 유사하나, 발진이 두피와 목에 약간 말고는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서 확진할 수 없다고 한다. 일단 통증과, 귓속에 염증 약간을 완화하기 위해 소론도 반 알 처방 받음. 이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소론도를 정말 좋아한다. 친절하고 약을 세게 쓰는 분이다.

 오후부터 왼쪽 목 뒤에도 동일한 통증이 가끔 느껴진다. 아주 불쾌한 두통. 신경 주사를 깊은 곳에 맞을 때, 뻐근하고 닿지 않는 곳이 아픈 감각. 오른쪽 피부의 신경통은, 목과 어깨는 사라지고 두피는 아직 예민하다. 동일하게 만져도 오른쪽이 훨씬 쓰라리다. 열감과 전신의 무기력감, 몸살과 같은 근육통이 느껴졌으나 이비인후과에서 쟀을 때 열은 없었다. 기록을 남겨두는 게 의미가 있는가 싶지만 쓸 일이 생기겠지. (※미래의 나: 실제로 생긴단다!)

 병원 2개를 들렀다가 집에 와서 쉬고, 좋아하는 돈가스를 시켜서 먹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많이 보았다. 다음 주에 컴백한다. 무척 기대가 되어서 못 죽겠다. 임현식을 따라서 파란 머리로 염색하려 했는데, 두피 발진으로 취소되었다.


 10월 9일(수) 두통이 남아있다. 약을 하루 3번 먹었는데 약효가 떨어질 때마다 두통이 심해진다. 뒷목과 뒤통수 부분이 뻐근하거나 깊고 불쾌하게 쿡 쿡 쑤시는 느낌. 통증이 심하진 않으나 지속적이다. 대후두 신경에 문제가 생긴 걸까? 일자목이긴 하지만 그렇게 머리가 아플 수가 있나? 식후 메스꺼움이 생겼다. 약 부작용인가 싶었는데, 잘 모르겠다. 소론도는 늘 문제없이 먹었다. 머리가 대신 아프기 때문인지 하반신이 아프지 않아서, 오랜만에 앉아서 컴퓨터 해서 좋았다. 몸에 통증 총량의 법칙 같은 것이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두피와 뒷목에 작게 올라온 발진은 옅어지고 있다고 한다.


 10월 10일(목) 팜비어를 다 먹어서 오늘부터는 약 없다. 두통이 남아있다. 목 뒤가 뻣뻣한 느낌과 함께 가끔 쿡 하고 온다. 두피를 긁으면 뻐근하게 아프고, 뒤통수 외에도 머리 전체가 무겁고 지끈거린다. 메스꺼움과 구역감이 있다. 식후에는 처음으로 느꼈는데, 공복에도 있다. 어지러움이 종일 있다. 흔들거리거나 빙글거리는 느낌은 아니고, 굶었을 때의 현기증처럼 시야에 힘이 빠지는 느낌.



 지금 보면 왜 통증의학과에 가보지 않았냐? 묻고 싶어지는데, 섬유근육통으로 장거리 이동은 아예 불가능한 상태였고, 로컬 개인병원 통증의학과는 16화에서 썼다시피 믿을 만한 의사가 못 되었기 때문. 환자의 증상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날까지 견디다가 견디다가… 드디어 더는 참을 수 없어서 금요일에 2차 병원 신경외과 외래를 봤다. 여기까지도 내내 병원을 전전하며 두통의 이유를 찾지 못  충분히 피로했지만, 입원 이후로 엄청난 서러움을 느꼈다. 대강 말하자면 의사 선생님이 무신경한 사람이었음. 글이 길어져서 다음 편에 이어서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24. 과민성 방광 이렇게 나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